매일신문

'길위 블랙홀' 환풍구, 대구도 안전은 없었다

지하철 모두 434곳, 16%가 20 안팎 지면형, 쉽게 오를 수 있어 '위험'

최근 경기도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로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19일 시민들이 대구 중구 현대백화점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도시철도 환풍구를 피해 걷고 있다. 평소 이곳은 보행자 통행이 많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시민들이 환풍구 위를 자주 지나갔지만 붕괴사고 이후 시민들이 안전을 의식해 환풍구를 피해 다녔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최근 경기도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로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19일 시민들이 대구 중구 현대백화점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도시철도 환풍구를 피해 걷고 있다. 평소 이곳은 보행자 통행이 많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시민들이 환풍구 위를 자주 지나갔지만 붕괴사고 이후 시민들이 안전을 의식해 환풍구를 피해 다녔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성남 판교 지하주차장 환풍구 붕괴 사고로 인해 환풍구 시설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도심의 큰 도로를 따라 이어진 지하철 환풍구는 접근을 막는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시민들에게 그대로 노출돼 있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인도에 버젓이 놓인 지하철 환풍구

19일 오후 4시쯤 대구 중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5번 출구에서 50여m 떨어진 인도.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이 몰린 이곳 바닥엔 20㎝ 높이의 환풍구가 길게 놓여 있다. 철제 틈 사이로 보인 바닥까지의 높이가 5m 이상 돼 보였지만 몇몇 사람은 그 위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다녔다. 환풍구 테두리를 따라 '통행주의'라는 글씨와 함께 검은색과 노란색 무늬의 색칠이 돼 있었지만 접근을 막는 펜스 등 안전장치는 없었다. 모서리가 직각으로 뾰족한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경사가 져 배달 오토바이가 사람을 피해 쉽게 환풍구 위로 오르내렸다. 김모(25) 씨는 "인도의 한 부분을 차지해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걷게 되는 데 그동안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이하 도시철도)에 따르면 큰 도로를 따라 설치된 대구 지하철의 환풍구는 모두 434개(1호선 212개'2호선 222개). 이 가운데 지면에서 보통 1m 이상 솟아있는 탑형이 83.4%인 362개(1호선 174개'2호선 188개)이고, 나머지 16.6%인 72개(1호선 38개'2호선 34개)가 20㎝ 높이 안팎의 지면형이다.

철제 덮개 위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지면형 환풍구가 주로 설치된 곳은 1호선의 경우 ▷월촌역~성당못역(7개) ▷대명역~교대역(11개) ▷반월당역~대구역(4개) ▷반야월역~안심역(8개) 등이고, 2호선의 경우 ▷이곡역~감삼역(8개) ▷두류역~반월당역(11개) ▷경대병원역~범어역(8개) 등에 지면형이 집중돼 있다.

이 가운데 반월당역과 중앙로역 사이는 대구 도심의 중심가로 인파가 넘쳐나고, 성당못역은 관문시장과 서부정류장, 신남역은 서문시장, 감삼역은 서남시장 등을 끼고 있어서 보행자가 많다.

◆안전장치는 전무

지면형 환풍구는 인도에서의 높이가 불과 20㎝ 안팎이어서 누구나 쉽게 그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펜스 등 안전장치가 없는 곳이 많다. 환풍구의 철제 덮개가 맨홀을 덮는 뚜껑처럼 여닫을 수 있도록 고정하지 않은 곳도 있다.

탑형 환풍구 가운데 높이가 1m도 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는 점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다. 탑형 중 높이가 불과 60~90㎝ 정도인 곳이 1호선에는 주로 대곡역과 상인역, 명덕역 부근에 10여 개가 있고, 2호선은 전 구간에 걸쳐 인도(중앙분리대와 교통섬, 조경지 등 제외)에만 80여 개가 된다.

특히 탑형의 경우 전체를 석재로 지은 1호선과 달리 2호선은 도심 미관을 해치거나 교통안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환풍구 상단을 투명 아크릴로 마감했다. 하지만, 아크릴과 석재가 맞닿은 부분에 턱이 있어 발로 디디고 올라가기에 쉽게 돼 있다.

◆도시철도 "안전성 보강돼 있어"

도시철도 측은 대구 지하철 환풍구가 사고가 발생한 판교의 민간 환풍구와는 달리 안전성이 보강돼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도시철도에 따르면 환풍구(깊이 5~12m)는 전체적으로 좁고 긴 형태(가로 1.5m×세로 6m 정도)이며, 가로방향으로 1.5∼2m 간격으로 콘크리트 격벽이 설치돼 있다. 이 격벽 가장자리에 L형 홈을 만들어 그 위에 덮개를 지지하기 때문에 하중을 견디는 힘이 세다는 것.

더불어 1m 이하의 탑형과 지면형 환풍구 중에는 안전을 위해 50~60㎝ 높이의 아크릴 구조물을 올린 곳이 상당수 있고, 조경지와 중앙분리대, 교통섬 등지에 설치된 환풍구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 시설부 관계자는 "탑형은 옆면이 직각으로 가팔라 받침대나 지지대가 없이는 웬만한 성인 남성도 올라가기 어렵다"며 "지하철 환풍구는 1㎡당 500㎏을 견딜 수 있게 설치됐고, 차가 자주 올라가는 일부 지면형 환풍구는 이를 견딜 수 있게 H빔을 추가로 덧대 안전하지만 환풍구 위를 걷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자료: 대구도시철도공사)

탑형 지면형 합계

1호선 174개 38개 212개

2호선 188개 34개 222개

합계 362개 72개 43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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