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문 가치, 안동에서 찾다] ④과거를 통해 미래를 배우다

"퇴계 선생의 선비정신 배우자" 금융·기업인들 도산서원으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지역 곳곳에는 퇴계 철학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과 미래 가치를 배우는 시설들이 빼곡하다. 사진은 도산별과 222주년 재현 과거시험 행사 모습. 엄재진 기자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지역 곳곳에는 퇴계 철학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과 미래 가치를 배우는 시설들이 빼곡하다. 사진은 도산별과 222주년 재현 과거시험 행사 모습. 엄재진 기자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다. 지역 곳곳에서 퇴계 철학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과 미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도산서원을 비롯해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국학진흥원 등에서 퇴계의 사상과 선비의 삶을 배우고, 그들의 철학을 연구하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유교적 가르침을 통해 나라가 어려울 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나라 구하기에 내던졌던 선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오고 있는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도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 수도답게 만들고 있다.

이달 15일 안동 도산서원에서는 '도산별과'가 치러졌다. 도산별과는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 선생 사후 222주년이던 1792년에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려 정조 임금이 특별히 치르도록 한 대과(大科) 시험이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한양이 아닌 지방에서 대과를 치른 유일한 과거시험이었다. 특히 올해는 도산별과가 치러진 지 222년되는 해로 전국에서 200여 명의 한시인(漢詩人)들이 시험에 참여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며 당쟁의 폐해를 절감한 정조가 탕평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영남 학문의 상징인 퇴계학을 정치 철학으로 삼기 위해 열었던 '도산별과'에는 유생 7천228명이 운집했다. 도산별과는 국민대통합 철학과 퇴계의 배려하는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흔적들이다.

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정조는 숙종 대 이후 중앙정계에서 축출당한 영남 남인세력을 다독여 탕평 정국을 이루고, 영남 학문의 상징인 퇴계학을 국가적으로 진흥하는 계기로 삼았다. 특히 퇴계는 당파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므로 퇴계의 얼이 깃든 도산서원은 시험장소로 그만이었다"고 했다.

◆퇴계 삶'철학 배우기 위해 5만여 명 찾는다

이달 25일 안동 법무부 법사랑위원회 주관으로 길주중학교 학생 40여 명과 우신산업 임직원 20명이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퇴계 선생의 삶과 철학, 선비정신을 배웠다. 이들은 이틀 동안 도산서원 탐방과 퇴계 선생을 배향한 상덕사 알묘, 퇴계 종손과의 대화를 통해 선비의 삶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정신적 가치를 배웠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올해 5만3천여 명의 수련생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 3만5천564명보다 40% 이상 늘어난 5만여 명 이상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련원은 지난 2004년부터 교육청과 대학 및 학교, 군부대, 교육연수원 등 45개 기관 단체들과 협약을 맺고 선비문화 체험을 통해 사라져 가는 인성'인문가치를 되찾아 주고 있다.

특히 기업체 연수생들은 지난 2007년 70명 남짓했으나 2009년 920명, 2012년 2천766명에 이어 2013년 4천53명 등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IBK기업은행과 신한은행, KEB외환은행, NH농협 등 금융업계와 KT, 한국남부발전, 한국전력 등 다양한 업종에서 꾸준하게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선비문화수련원은 공직자와 금융인, 기업인, 교사들에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선비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정신과 물질이 조화된 21세기형 인재양성의 최적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대구은행 이은아(1750기 수련생) 씨는 "이틀 동안의 선비문화 수련을 통해 '차분함'을 배웠다"고 했다.

김종길(73'학봉 15대 종손)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장은 "연수생이 늘어나는 것은 세상의 올바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국내 기록유산의 성지로 자리매김한다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도 지난해 4천854명의 연수생을 배출했다. 올 들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신규과정 750명을 비롯해 국학전문인력 양성과 국학순회 교양강좌, 여성리더 과정, 오피니언 리더, 향토사랑 문화교실, 경북 정체성 함양 연수, 경북선비아카데미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한국국학진흥원이 전국 유가에서 소장하고 있던 각종 유물을 기탁받은 지 12년 만에 40만 점을 넘어섰다. 국내 기록유산의 성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학진흥원은 전국 800여 문중에서 기탁한 40만5천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국보 132호)을 비롯해 1천200여 점의 보물과 718종 6만4천226장에 이르는 서적 인쇄용 목판인 '유교 책판'을 소장 관리하고 있다. 이 유교 책판은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이 유교 책판은 2015년 6월쯤 열리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 심사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유교 책판'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술을 책으로 찍어내기 위해 나무에 새긴 목판 기록물이다. 우리나라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기록유산 중 하나다. 특히 유학 집단의 사회적 공론을 거쳐 후손이나 후학이 자발적으로 경비를 모아 책을 인쇄하기 위해 목판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등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001년부터 전통 기록자료들의 수집'보존에 나서 '목판 10만 장 수집사업'을 펴오고 있다.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장은 "막대한 경비와 시간이 드는 목판서적 인출이 크게 증가한 것은 선현과 선조들의 저술과 기록들을 영구 보존하려는 학문 존중의 정신이 사회의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특히 책판은 거주지가 다른 저자들이 제작한 것이지만 '도덕적 인간의 완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서술됐고, 그 내용도 점차 연구'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두 한국 국학진흥원장은 "한국국학진흥원은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각종 유물 보관뿐만 아니라 연구를 통해 후세가 공부할 수 있도록 자료화할 것"이라고 했다.

◆선비들의 나라사랑 얼 이어간다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나라사랑 안동사랑 역사체험 캠프'에서 아이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선비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배우고 체험한다. 여름방학 기간 동안 이 캠프에는 안동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해 독립운동에 나섰던 항일애국지사들의 삶을 체험한다.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은 지난해 1만2천584명의 연수생을 배출했다. 선비정신에서 기인된 독립운동정신과 독립운동사 등 우리의 근대사를 활용한 정신문화 교육을 실행한다. 한국독립운동사와 경북독립운동 성지 현장탐방, 독립군 사관학교 훈련체험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 사람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한다.

안동 사람들은 1894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운동사 51년 동안 쉼 없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실천을 강조한 유교적 삶을 살았던 퇴계학맥의 선비, 유교 지식인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해 갔다. 이 때문에 지도자들의 정신을 잇고 알리기 위해 공무원과 교육계 연수의 폭도 넓혀 가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유적 해설사 양성과정을 이수하고 기념관 전시실에서 순수 자원봉사자로서 전시실 안내 및 해설을 담당하는 유적 해설사들의 모임인 '나라사랑봉사단'은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전문도 높은 독립운동사 해설과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 선조들의 구국정신을 배우는 '청소년역사체험캠프', 찾아가는 독립운동사 체험교실 '역사야 놀자~', 토요 청소년 답사 프로그램 '교실 밖 역사길 걷기', 토요 문화체험 한마당 '현충시설, 감성에 두드림' 등의 프로그램도 있다.

이수일 나라사랑봉사단장은 "올곧은 선조들의 행동과 철학을 배우고, 알리는 현장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봉사의 가치가 있다. 후세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버리고 구국 대열에 나섰던 선비들의 정신문화를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