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세 살 적은 질녀가 살고 있는 청도 풍각(豊角)으로 자주 드라이브 나간다. 대구 신천고속화도로를 신나게 달리면 어느샌가 갈등이 생긴다. 수성구에 살고 있어 풍각으로 가려면 두 가지 길이 나선다. 정대(停垈) 쪽으로 갈 것인가, 이서(伊西) 쪽으로 갈 것인가 두 방향의 길 때문에 갈등이 온다. 이것저것 생각해 보기도 전에 자연산천 볼 것이 많은 정대 쪽을 선택하고 만다.
대구에서 학창 시절 공부하고 나서 시골 선생 하다가 1981년 대구에 재입성할 때만 해도 정대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런 곳을 지금에 와서 차를 타고 떠나면 제일 먼저 반기는 곳이 가창댐이다. 비탈길 오르면서 가창댐 설치기념비가 보이고, 요즘에는 댐 전망대가 현대식으로 오롯이 설치되어 자주 내려서 조용한 가창호(嘉昌湖) 물속으로 청룡산 산그늘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곳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아베크족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 자판기라도 설치되어 있으면 쌉싸래한 로드카페의 맛을 즐기겠는데 아쉽게도 그것이 없다. 다시 전망대에서 나오자마자 광덕사를 지나 가창호 상류인 오리(梧里)를 지난다. 오리는 요즘 시내 거주하던 사람들이 물 좋고, 공기 좋은 동네를 찾아 저마다 자랑스럽게 동화 속의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은근히 내자가 그런 집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물론 나도 본래 시골 사람으로 형편이 되면 그렇게 살고 싶지만 내 마음일 뿐이다.
정대로 가는 한국에서도 아름다운 길로 들어서면 봄엔 벚꽃 속 터널이요, 가을엔 단풍 속의 터널이다. 그 아름다운 길은 철 따라 정다움을 남겨 주는 잊지 못할 길이다. 비가 오는 초봄이면 연둣빛 잎들이 아가 손 벌리듯 반겨 주고, 초여름이면 파스텔 톤에서 짙은 녹색으로 변하여 오는 손님 반가워한다. 초가을이면 노랗다 수줍어 붉어지려고 떨켜를 아등바등 붙들고, 초겨울이면 추위 오는데도 겁도 없이 가로수들이 벌거벗은 나목으로 조신스럽게 손님 맞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길로 심취하여 달리다 보니 까딱하면 잊을 뻔한 굿당과 작은 폭포 곁을 지난다. 여름 홍수 철이면 그곳 작은 폭포도 위용이 드러난다. 봄이면 진달래가 무진장 붉어서 간혹 내려 진달래 구경에도 홀딱 빠지는 곳이다. 그러면 정대를 지나가는 오지버스도 우리를 보고 잘 쉬어 가라는 듯 손짓한다.
어느새 정대 숲에 이르면 그 옛날에는 자유스럽게 들르기도 하였는데 어느 순간에 사유지가 되면서 용무 없이 주차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보인다. 어느 누가 이런 좋은 천혜의 고목 숲이 차지한 공원 될 자리를 팔아버렸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너무 애달파 울고 싶다. 군도 지방자치에 의해 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시민의 휴식자리를 내어 줄만도 한데, 이 어찌 된 상태인지 사유지가 되어 버렸네.
이런저런 생각에 정대미나리 단지가 있는 곳 비탈길을 오른다. 미나리 파는 간이원두막은 옛날 수박'참외밭에 있던 그런 시골풍 원두막이 왠지 생각나지 않게 한다. 오르는 길에 벚꽃집이 있어 한때는 장사가 잘되었는데 요즈음은 시큰둥해 보인다. 조금 지나니 미나리 엑스 집을 스친다.
가창호 상류이지 싶은 곳에 졸졸 골짝 물을 모아서 돌돌 호수로 호송한다. 요즘 그곳에 보기 드물게 간이화장실도 만들어 두었고, 예쁜 팔각정자도 설치하여 두었네. 그곳에 이르니 마치 외국인 양 가문비나무가 집단적으로 줄 맞춰 일대 관병식을 한다. 그곳만 응시하면 외국이 하나도 부럽지 않은 풍경이네. 디지털 카메라가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찰칵대고 만다.
이제 가장 굽이 돌아치는 언덕배기를 올라야 한다. 자가용은 물론 오토기어이지만 제대로 맞춰 힘을 써야 올라갈 수 있을 것이고, 오른쪽'왼쪽으로 자주 방향 바꿔 비탈 산길을 올라야 한다. 정대에서 올라가는 도로 오른쪽 수로에서는 가뭄 속에서도 흙 속으로 머금어 둔 물기를 짜내어 작은 물길로 조금조금 모아서 사르르 물소리를 내고 있다.
힘들게 마지막 굽이를 오를라치면 큰손녀가 좋아하는 청도반시 조형물로 만든 아주 큰 감이 우리를 반긴다.
"헐티재 다 왔어요! 저기 감이 보이면 맞아요!"
"하하하, 고놈 눈도 밝다."
정말 그러고 보니 헐티재 다 올라왔다. 헐티재(535m, 옛날에는 금곡현이라 하였다) 명칭은 청도군 각북면과 대구 달성군 가창면 경계지점으로 가창댐으로 넘어가는 정상고개로, 명칭 유래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다만 조선시대 이 지역이 토현(土峴)으로 표기되어 헐티를 흙으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것은 고개가 험난하고 힘들어서 숨을 헐떡이고 배가 고프다 하여 헐티재라 불렸다고도 전한다.
헐티재 마루에 올라 주차를 하고, 각북면 산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어느샌가 구름이 산허리를 감돌아서 금방 비가 올 기세다. 얼른 간이 휴게소로 들어가 잔치국수 한 그릇씩 시켜놓고 기다린다. 오늘 물론 잔치는 하지 않지만 그 옛날 누이들이 많아 잔치 때 잔치국수 먹는 것이 좋았다. 오늘이 그날과 겹쳐 보이는 것은 그만큼 많은 세월을 흘려보냈다는 증표인가?
잔치국수 후딱 해치우고 나니 빠질 수 없는 커피 한 잔씩 들고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청도 풍각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우중에 그만 왔던 길로 돌아오는 것을 재촉하고 말았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