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 때 일이다. 미 연방의 주력이던 북군은 연방 탈퇴를 선언한 남군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전쟁 초기 북군 군인들은 온갖 부실한 장비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싸구려 군화는 병사들의 발을 괴롭혔고, 형편없는 천으로 만든 군복은 비만 맞으면 입을 수 없을 정도였다. 표준규격에 맞춰 제작했다는 코트와 담요로는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격발조차 되지 않는 총이 보급되고, 톱밥이 섞인 화약이 공급됐다. 북군의 단기간 승리로 끝나리라던 전쟁은 4년을 끌었다.
모든 것은 부패 때문이었다. 전쟁을 이끌어야 할 장군들은 군수업자들과 유착했다. 지인들에게 군수품 공급을 맡기고 뒷돈을 챙겼다. 부패한 장군을 등에 업은 군수업자들은 불량 군수품을 스스럼없이 보급했다.
심각성을 깨달은 것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였다. 미 의회는 7명으로 소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섰다. 군수품 조달체계에 대한 조사 임무를 맡은 위원회는 1년여에 걸쳐 수백 명의 증인을 일일이 조사해 3천 쪽에 달하는 부패 보고서를 내놨다. 군복, 군용 식사, 탄약 공급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군수비리 사례로 빼곡히 채워진 보고서였다.
이를 근거로 의회는 1863년 부정청구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벌은 엄했다. 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최고 5천 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별도로 축낸 예산의 2배에다 건수마다 2천 달러씩을 더 얹어 게워내게 했다. 비리를 저질러 적발되면 패가망신할 정도였다.
법의 핵심은 '퀴 탐'(Qui tam'시민고발자) 조항이었다. 시민이 고발한 예산 비리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환수 금액의 15~30%를 고발자에게 포상금으로 지급했다. 고발자가 비리에 연루돼 있는 내부고발자라면 면책하는 것은 물론이고 포상금까지 얹어줬다. 의회 주도로 만든 법이 링컨시절 제정됐다 하여 링컨법이라 불리는 것은 아이러니다.
링컨법은 오늘날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군수비리는 물론 의료 보험 등 예산 관련 비리를 물샐 틈 없이 잡아낸다. 2012년 연방부패방지법이 적용된 범죄 중 70%는 내부고발자의 고발에 의해 드러났다. 1987년부터 2013년까지 이 법에 의해 환수된 예산이 389억달러(약 41조 원)나 된다. 그 가운데 70%인 272억 달러는 '퀴 탐'조항의 적용을 받았다.
150년 전 미국에서 벌어졌던 비리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다. 시중에서 1만 원이면 산다는 4G USB를 우리 군은 95만 원에 구입했다. 2억 원이면 살 수 있는 구형 음파탐지기를 41억 원에 구입한 것도 우리 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이런 비리를 막을 시스템 없이 두더지잡기식 대응만 하고 있다.
이런 도둑들이 군이나 방산업체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1년간 사정기관이 적발한 국고보조금 비리 액수만 1천700억 원에 이른다. 국고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복지 예산 100조 시대를 맞고 있지만 이 시간 어디서 또 예산이 줄줄 새고 있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세계는 지금 부패와의 전쟁 중이다. 이 전쟁은 중국이 선도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취임 이후 '부패 척결없이 미래 없다'며 부패청산에 매달리고 있다. G2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을 누르겠다는 야심은 부패 청산 의지에서 읽을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 재정을 축내면 해당 금액의 최대 5배를 물리는 내용을 담은 '공공재정 허위'부정청구 등 방지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링컨법의 한국판이다. 지금 해도 미국에 비해 150년 이상 늦다. 우리 국회엔 이외에 공직자의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이 상정돼 있다. 두 법은 우리 사회의 부패 청산 의지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크다. 선진국 의회가 이미 수십~수백 년 전 스스로 찾아 만든 법들이다. 그럼에도 우리 국회는 이런 법 제정에 모르쇠 한다. 김영란법만 해도 대통령이 나서 수도 없이 통과를 간청해도 꿈쩍도 않는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부패 청산을 위한 제도 마련엔 관심이 없고 오직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에만 눈독을 들인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 5년 단임이란 헌법 때문이 아니라 권력을 누리려고만 하는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이다. 국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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