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에서 배우다…다양해지는 학교 프로그램

아이들은 교과서 밖 세상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잠시 교실을 벗어나 길을 따라가면서 자연과 호흡하고 지식도 쌓은 프로그램이 운영돼 눈길을 끌고 있다. 자전거로 낙동강 일대를 탐방한 경북공고 학생들 모습. 경북공고 제공
아이들은 교과서 밖 세상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잠시 교실을 벗어나 길을 따라가면서 자연과 호흡하고 지식도 쌓은 프로그램이 운영돼 눈길을 끌고 있다. 자전거로 낙동강 일대를 탐방한 경북공고 학생들 모습. 경북공고 제공
대건고의
대건고의 '부자동행 대구둘레길 걷기'
달성고의
달성고의 '영남 과거길 탐사 프로젝트' .
중앙고의 일본으로 떠난
중앙고의 일본으로 떠난 '인문 고전 문학 기행'

우리 학생들의 일상은 단순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학교에 머물다 '학원 순례'에 나선다. 피곤한 얼굴로 집에 돌아올 때면 이미 늦은 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비슷한 일상이 반복된다. 학년이 올라가도 이 같은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고교 대부분은 하루종일 수능시험 준비에 신경을 쏟을 뿐이다.

변화의 기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 활동 등 체험 교육, 진로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고교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주제를 정해 길을 떠나는 프로그램. 길은 자연과 접할 수 있는 통로일 뿐 아니라 시대정신과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공간이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구 고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연 탐사+진로 탐색', 경북공고의 국토 탐방 프로그램

경북공업고등학교(교장 김중곤)는 최근 2차례에 걸쳐 낙동강 상'하류 150㎞를 자전거로 종주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 이름은 '자전거를 탄 토목'. 이 학교 토목설계과 박종탁 교사는 "실제 완공된 구조물을 살펴보면서 학교 수업 때 배웠던 토목'건설 분야 기초지식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기획한 프로그램"이라며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에 대한 견문을 넓혀 진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 토목 분야가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전거 안장에 오른 학생은 토목설계과 1학년 류다훈, 박성민, 김대진, 현도훈 학생과 2학년 윤동근, 도완호, 박인범, 박재민, 이지훈, 김도훈 학생 등 10명. 박 교사와 김명규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프로그램 운영 예산은 대구시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았다.

일행이 1차로 국토 탐방에 나선 것은 지난달 25일. 기차로 상주역까지 이동한 뒤 경천대와 자전거 박물관을 찾았다. 이후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를 거쳐 강정'고령보를 돌아보며 토목 지식이 현장에 적용된 모습을 살폈다. 타이어에 구멍이 나는 등 자전거에 잔고장이 생기고, 체력적인 문제가 겹쳐 시간이 지체되면서 늦은 밤이 돼서야 대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달 2일 이어진 2차 탐방 지역은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창녕 우포늪, 국가산업단지와 대구테크노폴리스 등 산업 단지 조성 현장, 달성보 등이었다.

자전거에 올랐던 학생들은 이번 프로그램이 즐겁고 유익했다고 전했다. 2학년 박인범 학생은 "체력이 약해 탐방을 떠나기 전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시원한 경치 덕분에 즐거웠고 후배들과 가까워져 좋았다"며 "자연과 어우러진 토목 건축물을 눈으로 직접 본 뒤 공부도 한결 흥미로워졌다"고 했다.

1학년 김대진 학생은 "제각기 다른 모양인 낙동강의 보들이 인상적이었다"며 "낙동강 구간은 깔끔히 정비돼 있었지만 녹조로 인해 역겨운 냄새가 나는 곳도 있어 '개발'과 '환경 보전'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경북공고는 이번 탐방 내용을 영상으로 담았다. 이를 편집한 뒤 내년 토목학회가 주관하는 고교생 토목공학 UCC경진대회에 출품할 계획이다. 학생들과 탐방 일정을 함께한 김명규 교사는 "학생들이 낙동강을 보면서 호연지기를 키우고 전공에 대한 지식도 쌓았을 것"이라며 "사제간, 선후배 간 친목을 다지는 기회가 됐다. 학생들에게 고교 시절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역사와 문화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길

'부자동행(父子同行) 대구둘레길 걷기'는 대건고등학교(교장 이두영)를 대표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대구의 주요 산천과 그 주변에 조성된 둘레길을 부자가 함께 걸으며 대구의 역사, 지리, 문화, 생태 환경 등을 체험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2012년 시작해 3년째를 맞는 프로그램이다 .

올해 대건고는 ▷비슬산 마비정 누리길 ▷비슬산 삼국유사길 ▷앞산 자락길 ▷하빈 육신사와 강정보 녹색길 ▷환성산, 초례봉 둘레길 ▷가산산성과 한티재길 ▷달성공원과 대구 근대골목 탐방 등을 진행했다. 아버지와 아들로 구성된 35개 팀이 이 길을 걸었다.

1학년 김민성 학생은 "건축가가 되는 게 꿈인데 비슬산 대견사의 건축 기법 등 우리 전통 건축의 특징을 알게 돼 유익했다"고 했다. 2학년 이정석 학생의 아버지 이기하 씨는 "아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대건고 이대희 교사는 "이 프로그램은 부자간에 소통의 장을 여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 이야기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느끼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자는 의도로 기획했다"며 "우리의 자연과 거기에 깃든 역사와 삶을 직접 보면서 활자에 매여 있던 지식에 숨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달성고등학교(교장 소상호)는 지난달 '영남 과거길 탐사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5월 낙동나루를 시작으로 7월 문경새재, 9월 충주 탄금대, 10월 밀양 아리랑길 등 영남 과거길 주요 구간 4곳을 학생, 학부모, 교사 등 100여 명이 함께 돌아봤다. 탐사 과정에서 소감문 쓰기, 자연보호 활동 등도 함께 진행해 체험 활동이 단순한 여행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했다.

2학년 한주원 학생은 "힘든 적도 많았지만 탐사 후에 뿌듯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며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보다 부모님,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더욱 좋았다"고 했다.

대구중앙고등학교(교장 박재찬)의 '인문 고전 문학 기행'도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이다. 2012년 중앙고가 특성화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뒤 인문 고전 독서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한 것이다. 학기당 1차례 국내 문학 기행을 진행하고 연간 1회는 해외를 찾는다. 지난해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공부한 뒤 중국 베이징과 청더 일대를 다녀왔고, 지난달에는 일본 근대 문학과 저항시인 윤동주의 자취를 찾아 일본 오사카, 교토, 고베, 아와지마 일대를 돌아봤다.

평소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2학년 정연주 학생은 "일본 문학의 배경이 된 곳을 직접 방문해 문학 작품과 작가에 대해 생생하게 알 수 있어 좋았다"며 "도시샤 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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