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꺼'가 그립다. 대한민국 3대 도시(서울'부산'대구)로서의 자존감을 잃은 지도 오래다. 이젠 인구도 인천보다 40만 명 가까이 적다. 경제가 곤두박질친 건 둘째치고 우리 역사를 지탱했던 대구 정신마저 흐릿해지고 있다.
돌아보면 '대구꺼'는 많았다. 갓바위, 우방랜드(우방타워), 대구 오리온스, 한일극장, 제일서적, 밀리오레, 동아백화점, 고나우 여행사 등.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대구꺼'라는 말을 붙일 수 없게 됐다. 한때 '대구꺼'였던 이 많은 것들이 지금은 경산 갓바위, E-World(83타워), 고양 오리온스, 동성로 CGV, 교보'영풍문고, 노보텔, 이랜드 그룹의 동아쇼핑, 내일투어 대구지사로 변해 있다. 대략 더터봐도(더듬어 살피다) 이럴진대, 찾아보면 다른 분야에서도 '대구꺼'가 사라지거나 바뀐 곳도 많을 것이다. 동성로 한복판을 한참 걸으면서 좌우를 살펴도 온통 외지 브랜드 일색이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대구는 껍데기만 좇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발생한 팔공산 사태를 보면 더 그렇다. 영천시는 경북도의 묵인하에 대구 팔공산을 슬금슬금 넘보고 있다. 팔공산 정상 주변이 모두 영천 땅으로 경계 지어진 것을 이용해, 최고봉인 '비로봉'을 '천왕봉'으로 바꾸기 위해 국가지명위원회에 지명 변경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대구시와 대구시민이 넋 놓고 있다가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서울역과 인천공항 등 대한민국 주요 포스트에 '영천 팔공산'이라는 홍보물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대구가 연고지라는 세계적인 대기업 삼성을 봐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 삼성의 창립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대구를 근거지로 일으켜 세운 삼성그룹인데도, 아들 이건희 회장과 손자 이재용 부회장은 그동안 대구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야구 통합 4연패를 앞두고 있는 명문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역시 연고지 팬들을 위한 파격적인 팬서비스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삼성이 진정 대구 야구팬을 사랑한다면 수천억원이 들더라도 일본 도쿄돔 부럽지 않은 대한민국 최초의 최첨단 돔구장을 홈구장으로 지어줄 만하다. 그런데 삼성은 대구시와 밀고 당기는 거래(?)를 하다 결국 적당한 새 야구장을 건립기로 하고, 500억원을 투자하는 대신 25년간 관리운영권을 독차지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삼성 메모리얼 파크(옛 제일모직 부지)도 어떤 실체를 드러낼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알맹이가 없기는 대구 문화계도 마찬가지. 한 지인이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계명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수성아트피아, 대구시민회관 등 좋은 공연장들이 다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외지인들의 돈벌이장 아닙니까?" 지난해까지 문화부 공연 담당기자였기에 이 말에 뜨끔했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실제 그랬다. 이 좋은 시설의 공연장들이 지역에서 생산된 콘텐츠가 아닌 톱스타급 가수나 배우, 국내'외 유명 공연단체, 대형 기획사들의 배를 불려주는 공간이 됐다. 아직 논란이 진행 중인 이우환 미술관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구에 사는 것이 한편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생각이 언뜻 뇌리를 스친다. '대구꺼'로 알맹이가 꽉 찬 대한민국 자존심 1등 도시 대구를 다시 한 번 꿈꾸기엔 너무 멀리 왔을까? 그래도 '다시 뛰자! DAEGU!'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