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커피는 이제 일상이다. 거리는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커피 전문점이고, 신혼부부 혼수 품목에도 커피머신이 포함됐을 정도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밥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마신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예술 작품 속에 이러한 사회 현상을 담은 작가가 있다. 향기로운 커피 이면에 숨겨진 아동 노동 착취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홍지철(28) 작가다.
◆커피에 담긴 불편한 진실
지난주 대구 남구의 작업실에서 홍 작가를 만났다. 작업실 곳곳에는 윗옷을 입지 않은 아프리카 아이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스타벅스 커피잔 로고에 들어간 웃는 아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이 등 단순한 이미지로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아동의 현실을 조용히 고발한다.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커피 한 잔에는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현지 노동자의 삶이 담겨 있음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홍 작가가 커피를 작품 중심에 가져온 데는 계기가 있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대학가 밥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한 끼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데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학생들을 보며 아이러니를 느꼈죠. 예전에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원두커피 기계를 사서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또 충격을 받았어요. 커피가 (우리나라의) 문화가 됐다는 사실이 그때 피부에 와 닿았어요."
2011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전시 활동이 시작됐다. 그의 대표작인 '매우 향기로운 세상'이다. 주 재료는 커피를 갈아 만든 물감이다. 이 물감은 인스턴트 커피믹스 가루를 물에 풀어서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감싸는 주요 색감은 갈색이다. 커피로 나타낼 수 있는 색이 제한됐다고 표현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커피가루에 농도를 조절해 작품 속 아이의 눈과 눈썹, 피부색에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 화폭에 화려한 색감은 없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홍 작가는 "이 작품을 하기 전에 화려한 색깔을 많이 사용해서 미련이 없다"고 말했다. "인물 머리카락은 붓을 쓰지 않고 커피 가루를 뿌려서 거친 질감을 표현해요. 손으로 한 번 만져보세요. 표면이 거칠죠? 대신 배경은 사포로 백 번 넘게 문질러서 반질반질하게 만들어요. 아프리카 아이들과 대조되는 잘 다듬어진 현대 사회를 표현한 거예요."
◆작품 속에 담긴 사회 비판
홍 작가는 부지런하다. 우리 나이로 이제 서른인 그는 지금까지 20여 차례 단체전에 참가했고, 개인전도 경기도 파주와 대전, 강원도 춘천을 돌며 열었다. 이달 14일에도 대구 방천시장 안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그의 그림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작품 속에 담긴 '사회' 때문이다. 기자가 사회 비판을 하는 도구가 글이라면, 홍 작가는 그림이다. 그는 계명대 서양화과에 재학할 때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많이 그렸다. 성형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자살폭탄테러, 저출산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건드리며 사회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날렸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대부분 신문 기사와 뉴스를 통해 얻는다. "백호랑이 띠에 열광하던 시기에는 인형 뽑기 기계에서 백호랑이 인형만 뽑혀 올라가는 그림을 그렸어요. 또 언제부턴가 우리는 스마트폰에 중독됐잖아요? 이런 문제도 그림을 통해 비판했어요."
그는 앞으로도 사회성 있는 작품을 계속해서 그릴 생각이다. 홍 작가의 시야에 들어온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어요. 멀리서 브랜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 같다고 추측했는데 제 예상이 맞았어요. 요즘 나오는 아웃도어 제품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해외여행을 갈 때도 유명 아웃도어 옷을 입고 가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요. 이 현상을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또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 등 카메라에 둘러싸여 감시당하는 현대인의 모습도 다음 작품 주제로 염두에 두고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주로 화폭에 담은 홍 작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아직 한 번도 아프리카 아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작품에 등장한 아이들의 모습은 인터넷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홍 작가는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어 봉사활동도 여러 번 신청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꼭 한 번 가볼 생각"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 현상을 나만의 '화풍'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