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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화려하게 살다 죽어 친일 꼬리표 남긴 윤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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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 법과를 졸업, 보통 문관시험과 변호사 시험, 고등 문관시험 행정과와 사법과 합격, 전남 강진군수와 무안군수, 총독부 사무관 등으로 관직생활을 누렸다. 광복 이후엔 교수, 국회 간부, 민의원, 신민당 국회의원, 민정당 국회의원, 국회 부의장 등 화려한 인생을 살았으나 친일(親日) 꼬리표를 남긴 정치인 청곡(靑谷) 윤길중(尹吉重'일본식 이름 平沼吉重·1916~2001).

물론 시련도 있었다. 1956년 오늘 조봉암(曺奉岩) 위원장이 창당한 진보당에 참여, 간사장으로 선출되면서 1958년 1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진보당 사건'이 터지자 체포됐다. 이 사건으로 조봉암은 사형돼 목숨을 잃은 반면 그는 1959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조봉암은 2011년 대법원에서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또 1961년 5·16 군사정부 때 투옥돼 1968년까지 7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진보당 참여에 이어 1960년 사회대중당 창당 경력을 가진 그는 출소 이후 박정희 정권 반대 진영에서 박 정권의 3선 개헌 반대운동, 1970년 신민당 입당으로 야당의 길을 걸었다. 1971년엔 신민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에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당 쪽으로 변신, 민주정의당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81년부터 1992년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하며 국회 부의장까지 차지했다. 죽어서는 2009년 발간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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