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프랑스 군대 내 성폭력과 성추행 실태를 2년간 추적 조사한 책 한 권 때문에 프랑스가 떠들썩했다. '보이지 않는 전쟁'(la guerre invisible)이라는 제목을 붙인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흔히 국가 안보나 군대, 기업에서 벌어지는 정보전이나 심리전을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군대 내 각종 범죄와 구조적 문제에 '전쟁' 표현을 쓰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프랑스는 여군 비율이 1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시라크 정부 때 정책적으로 여성의 문호를 넓히면서 20년 새 두 배 넘게 늘어 모두 6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남성 위주의 군대에서 여군은 성폭력의 희생자로 전락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 본토에서 말리까지 여군에 대한 성폭력'성희롱 사례들을 조사했다. 성범죄가 군에 만연해 있고 제대로 된 조사나 처벌도 없다는 점을 낱낱이 폭로했다. 여성성을 지우기 위해 약을 복용하거나 압박붕대로 가슴을 조이고 다닌 사례나 프랑스군의 마초(Macho) 문화와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여군이 잇따라 군복을 벗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국방부는 연간 70여 건의 군 성폭력 범죄가 일어난다고 발표했지만 사실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최근 국내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송된 프랑스 공영 국제방송 'TV5'의 프랑스군 성폭력 범죄 르포는 미군의 사례를 들어 전체 여군의 30%가량이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미군의 경우 3시간마다 강간 사건이 발생하고, 스웨덴 여군 3명 중 1명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라는 보고서도 있다.
한국군 내 여군 비율이 높아지면서 성폭력'성추행 문제도 심각하다. 얼마 전 상관의 성관계 요구를 견디다 못해 여군 대위가 자살하는 사건 등 여군에 가해지는 성범죄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이를 군대라는 특수 상황의 틀에 가두거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며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여군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조기에 적극 예방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우리 군을 지켜내려면 군대 문화와 여성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관용'을 천명하고 10대 개선안을 발표한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도 빨리 손쓰지 않으면 프랑스나 미국 군대 꼴 나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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