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상차림으로 바쁜 저녁 시간, 시어머니 김판호(66) 씨는 그제야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온다. 집에는 유달리 깔끔한 며느리 로리타(41) 씨가 있다. 며느리는 온종일 쓸고, 닦고, 장난꾸러기 두 아이의 뒤치다꺼리까지 하느라 한가할 새가 없는데 종일 집을 비우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들어오는 시어머니가 섭섭하다. 하지만 시어머니도 할 말은 있다. 한번 화가 나면 불같이 대드는 며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3남매를 키운 시어머니. 뒤늦게 큰아들을 장가보낸 후 시어머니 대접을 받으며 살겠거니 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화가 나면 시어머니를 잡아먹을 듯 덤비는 며느리를 당할 재간이 없다. 같이 대거리를 하다가는 큰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에 며느리를 피한다.
9세 때 아버지를 여읜 큰아들은 홀어머니와 두 동생을 위해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번 돈은 꼬박꼬박 어머니에게 맡겼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 어머니에게 말은 했지만 아내에게 생활비를 맡겼다. 그런데 경제권이 넘어간 후 집안에 폭풍이 몰아쳤다. 사이가 좋던 고부관계가 틀어져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며느리의 고향은 필리핀 라우니온. 친정까지는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7시간을 꼬박 달려가야 한다. 마음먹고 고부는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난다. 필리핀의 '만성절'이 있는 즈음, 필리핀을 찾은 고부. 며느리 가족의 성묘를 두고 오랫동안 쌓인 고부 갈등이 폭발한다. 시어머니가 성묘를 거부하자 화가 난 며느리는 불처럼 화를 냈다. 처음 본 사돈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한 시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경달 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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