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국가와 도시로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나라와 지역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놓은 상징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흔히 '랜드마크'라고 불린다. 이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만드는 경관상의 지표이다. 천연적 지형'지물일 수도 있고, 장인의 혼이 서린 건축물일 수도 있다. 이런 랜드마크들은 찾는 이들에게 지역의 장구한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달성군 화원의 낙동강 사문진 나루터. 몇 아름이나 되는 팽나무 한 그루가 마치 옛 서당의 깐깐한 훈장처럼 위엄을 지키고 서 있다. 수령이 족히 500년 정도는 됐을 것으로 전해진다. 팽나무가 바로 이곳 사문진 나루터의 랜드마크인 동시에 마을의 수호신이다.
이처럼 사문진의 팽나무는 단순히 오래된 한 그루의 노거수라는 의미를 떠나 한마디로 지역주민들의 정체성이다. 사문진에 깃든 정서와 역사 등 문화적 일체감을 멀리서 찾아온 방문객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대단한 마력을 지닌 것이다.
조경학계 관계자인 김학수(67) 씨는 "팽나무는 뿌리가 굳건해 태풍과 같은 강풍에 잘 버텨 해안이나 강가에 주로 많이 있다. 특히 수형이 우람한데다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예로부터 금목신(金木神)으로 불리며, 느티나무와 함께 당산목이나 정자목이 됐다. 사문진 나루터의 팽나무 역시 같은 차원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조선시대 사문진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고령과 인접한 창녕, 의령, 합천 등 영남권의 보부상들이 오가는 길에 꼭 들를 정도로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주막촌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술집과 식당, 여관을 겸한 곳이다. 지금의 팽나무가 그때부터 사문진의 주막촌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 사공들은 이 팽나무에 밧줄을 매 나룻배를 정박시켰다. 사문진에 전국 각지의 보부상들이 들어오면 팽나무 아래에는 임시 장터가 섰고, 선주들은 좋은 날을 골라 만선과 무사고를 기원하는 풍어제도 올렸다고 한다.
사문진의 주막촌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춘원관'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인 1948년쯤 건물이 헐렸다. 당시 춘원관 역시 '팽나무 주막'으로 통했을 만큼 팽나무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한다. 춘원관은 1970년대 초에 다시 복원돼 대구 최초의 매운탕집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이 일대 먹거리촌 형성에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이후 1990년대에 들면서 뱃길 대신에 낙동강에 대형 교량인 사문진교가 들어서면서부터 사문진이 점차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던 마지막 18곳의 음식점 등 상가들도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문을 닫고 사문진을 떠났다. 정부가 4대강 사업 시행에 따라 사문진의 모든 건축물 등 구조물이 철거되고 강과 인접한 대형 수목들도 모두 제거됐다. 사문진의 수호신으로 500년을 지켜온 팽나무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됐다.
4대강 사업 착공 당시 팽나무의 소유권은 식당 주인 박모(68) 씨가 갖고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사문진 나루터가 완전히 헐리게 되자 한 조경업자가 나타나 '팽나무를 골프장에 조경수로 갖다 심겠다'고 했다. 결국 박 씨는 200만원에 팔기로 하고, 우선 계약금 100만원을 받았다.
사문진 나루터 팽나무를 단돈 200만원에 사들인 조경업자는 그야말로 '땡잡은' 셈이었다. 워낙 크고 우람해 골프장까지의 수송비와 이식비 등으로 엄청난 돈을 들여야 할 형편이었지만 아름다운 수형(樹形) 등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볼 때 부대비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뒤늦게 사문진 나루터의 팽나무가 팔리게 됐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김문오 군수는 관련부서 직원을 보내 진위를 파악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뜬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다.
김 군수는 즉시 '팽나무 지키기 작전'에 나섰다. 우선 조경업자를 설득하는 게 급선무였다. 팽나무가 빠진 사문진 나루터는 '팥소 없는 찐방'이기 때문이다. 오랜 설득 끝에 조경업자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조경업자는 자신의 사업도 좋지만 김 군수와 달성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달성군에서 200만원을 조경업자에게 물어 주는 조건으로 성사됐다.
달성군은 나무 전문가를 불러 다시 찾은 팽나무에 대해 정밀진단을 벌였다. 진단 결과 그동안 팽나무가 주변에서 벌인 각종 공사로 인해 잎과 가지가 마르는 등 점점 쇠약해가는 상태였다. 군청 공원녹지과는 수백만원을 들여 아픈 팽나무에 수액주사 처방을 내리는 등 외과적 치료를 통해 싱싱했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 놓았다.
사문진 나루터 초입 마을인 화원읍 성산리의 한 주민은 "그동안 김 군수가 지극정성으로 팽나무를 살려놓은 덕분에 다시 사문진 나루터가 일류 관광지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팽나무 소유자였던 박 씨도 "그때는 생각이 짧았다. 500년의 세월을 잊은 채 늠름한 모습을 되찾은 사문진 나루터의 팽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했다.
달성군은 지난해 11월 팽나무를 배경으로 삼아 옛터 8천856㎡ 부지에 한옥 형태의 전통 주막 3채를 새롭게 단장한 '사문진주막촌'을 복원해 다시 열었다. 4대강을 중심으로 옛 전통을 살린 주막촌의 복원은 예천 삼강주막촌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다.
달성군시설관리공단에서 공공형 사업으로 운영 중인 사문진주막촌 입구의 사립문을 들어서면 우뚝 선 두 장승과 솟대가 전통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팽나무 주변으로 둘러쳐진 새끼줄에는 관광객들이 꽂아둔 소원지가 가을 바람에 펄럭인다.
사문진의 옛 영광을 재현하듯 평일에는 1천여 명, 주말에는 5천여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연일 북적인다. 사문진주막촌이 달성군에서 황금알을 낳는 캐시카우(현금창출원)가 됐다.
개촌 초기에는 월매출이 2천만~3천만원 정도에 불과했지만, 시설 확충 및 메뉴 다양화 등의 노력을 통해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되는 지난 8월 월매출액이 1억원을 돌파하는 등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달성군을 전국에 알리는 홍보역할은 물론 지방세수 확대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김문오 달성군수는 "하찮게 보이는 '오줌싸개 동상' 하나가 벨기에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관광상품이 됐듯이 사문진 나루터의 500년 팽나무도 충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문화와 예술을 접목시키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달성 김성우 기자 sw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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