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세대 간 전쟁

대구가 현재 직면한 갈등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세대 간 갈등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쓸데없는 소리라며 콧방귀를 낄지도 모른다. 노사 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구시장과 내로라하는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노사 관계자가 서울에서 노사 대평화 선언을 하고 돌아온 것이 바로 엊그저께였는데, 노사 갈등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한숨 돌리며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하는 마당에 무슨 실체도 없고 한 번도 주목한 일이 없는 엉뚱한 갈등 이야기를 꺼내느냐며 역정을 낼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도시는 갈등적 상황을 본연의 구성 인자로 포섭하고 있다. 대구가 직면하고 있는 갈등도 마찬가지로 다면적이며 또한 복합적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노사 갈등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중요한 사안이 벌어지면 예외 없이 진영적 논리와 정파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발목을 걸고넘어지는 정치적 갈등의 양상도 이제는 지겨운 레퍼토리다.

계층별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갈등적 요인도 뇌관이 터질 경우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특히 도시 내부의 빈부격차는 매우 불안한 지점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뿐인가. 남녀 성별 갈등의 문제에 관해서는 대구의 경우 항상 오명의 도시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세대 간 갈등이 다른 어떤 갈등적 상황보다 심각하다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 글의 제목을 세대 간 전쟁이라고 붙이고 있는 것은 극단적인 과장이 아닌가?

통상적으로 보면 갈등에는 전선이 형성된다. 전선에서는 점잖든 혹은 막가파식이든 상대방 공격을 위한 삿대질과 핏대 세운 고성이 오가곤 한다. 그런데 세대 간 문제에는 전선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지역의 청년은 자신이 속한 세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기성세대와 싸우고 공격하는 대신에 도시를 떠나는 탈주의 전략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자신의 미래를 걸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은 전선을 형성하여 맞싸우는 대신 집단적으로 지역을 이탈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전략이야말로 기성세대와 싸우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구에서 세대 간 갈등은 전선이 형성되지 않는 전쟁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때로는 전선을 만들지 않고 싸우는 전쟁의 결과가 더욱 참혹할 수 있다. 청년이 떠난 빈 도시에 기성세대가 점령군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제 맘대로 의사 결정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현대 예술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위험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예술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아도르노의 현대 예술에 대한 이러한 진술은 대구의 세대 간 전쟁을 해독하는 데 적절하게 투영된다. 청년의 이탈로 인해 대구는 세대 간 문제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때문에 아도르노의 말처럼 대구는 더욱더 심각한 위험으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다. 청년이 사라진 도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불임의 공간이다. 불임의 도시에서 창조는 불가능하다. 그 자리에서 기성세대가 들어 올리고 있는 창조 경제의 깃발은 위험하고, 심지어 불온하기까지 하다.

청년을 환대하는 방향으로 대구의 정책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를 확대하여야 한다는 것은 결국은 청년을 환대하여 지역에 안착시키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청년 환대 정책의 핵심은 그들이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공유적 자산(commons)

을 제공하여 그들의 창조적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그것을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좋지만 낡은 것에서 시작하지 말고, 나쁘지만 새로운 것에서 시작하라'는 극작가 브레히트의 격언은 지역에서 청년 문제를 논의할 때 상기할 만하다. 청년은 기성세대에게 나쁜 상대일 수 있다. 왜냐하면 청년은 기성세대에 양보와 희생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쁘지만 새로운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도시가 소멸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함께 갇혀 있다면 다른 선택은 없다. 대구에서 세대 간 전쟁의 전선이 만들어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영철/ 계명대 교수·경제금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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