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서산단 땅값 5배 껑충 "입주 꿈도 못 꿔요"

갈 곳 잃은 소규모 제조업체

대구 북구 유통단지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연 김국천 사장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성서5차산업단지에 825㎡(250평) 규모의 땅을 분양받으려 했지만 좌절됐다. 최소 매매 단위인 1천650㎡(500평)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대구 외곽에 330㎡(100평) 규모의 공장을 임대했지만 공장이 협소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사장은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려고 해도 땅 때문에 다들 접어야 할 판"이라며 "아파트만큼 비싼 공장 부지가 말이 되느냐"고 했다.

대구 지역 내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시작해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지만 공장 부지 가격이 치솟고 달성 국가산업단지와 대구테크노폴리스 등 신규 분양하는 곳은 최소 매매 규모 제한에 걸려 부지를 구입할 수 없다.

◆사업자는 늘고, 갈 곳은 없고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대구는 소규모 사업자가 많다. 검단동 유통단지에만 700여 개의 소규모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관계자는 "소규모 공장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자가공장이 아닌 임대공장이다"며 "사업을 키워 공장을 매입하고 싶어도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유통단지 내 소규모 공장 가운데 자가공장은 3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역 내 소규모 사업장은 갈수록 증가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구 지역 광공업의 건축 면적에 따른 사업장 수(1천㎡ 미만)는 2007년 말 3천96개에서 2012년 4천164개로 1천 개 이상 급증했다.

소규모 사업장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터전을 잡을 부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구 북구 검단공단에서 660㎡(200평) 규모로 기계부품 하청공장을 했던 이모 사장은 공장을 두 배가량 키우기 위해 주변 땅을 물색했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성주군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했지만 물류비 부담에다 구인난, 주변의 민원 때문에 공장을 접어야 했다.

이 사장은 "대구 인근에서 적은 규모의 공장을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자가 공장을 가진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공장을 임차해 사업하는 이들은 공장 부지 때문에 성장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구 지역의 임대 공장 수는 2007년 1천428개에서 2010년 2천16개로 증가했다. 결국 소규모 공장을 임차해 운영하는 제조업자들이 규모를 키워 자신의 공장을 가지고 싶지만 정작 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12년 3월 경매에 나온 성서산업단지의 옛 삼성상용차 부지 내 용지 2만4천314㎡의 낙찰가격은 3.3㎡당 408만원이었다. 10여 년 전 대구시가 기업에 분양한 가격(72만6천원/3.3㎡)에 비해 5배 이상 뛰었다.

현재 성서산업단지 내 대로와 도시철도 역 인근의 금싸라기 땅은 3.3㎡당 가격이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도심 내 위치한 서대구공단과 3공단의 가격은 더욱 비싸다.

보광직물 손정길 회장은 "인근 공장 부지를 2년 전에 평당 600만원에 팔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지금은 더욱 비쌀 것"이라고 말했다.

◆땅값은 오르고, 새 부지는 못 사고

공장 부지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꼽는다. 소규모 제조업자들이 원하는 660~990㎡ 규모의 땅이 잘 없기 때문. 있더라도 대부분이 매매가 아닌 임대다.

일부에서는 '세금'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구입 당시보다 5배나 뛴 땅값 때문에 세금도 덩달아 뛴다. 서대구산업단지협회 고동현 이사장은 "거액의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임대를 하면 된다는 판단을 내리면 매물로 나올 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땅을 찾는 이는 많지만 나와 있는 것이 없으니 가격이 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넓은 공장 부지를 사들여 분할해 판매하는 '기획부동산'이 늘어난 것도 소규모 공장 부지 부족의 한 원인이다. 실제 서대구공단과 3공단 내에는 곳곳에서 소규모 공장 부지를 판매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산업 집적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산업용지의 분할 기준은 1천650㎡(500평)다. 대구시 역시 이 법률에 따라 성서5차산업단지와 테크노폴리스, 국가산업단지 등 신규 산업단지의 분양 최소 단위를 1천650㎡로 정했다. 한 업체 대표는 "최소 분양 단위를 명시해 놨을 뿐 기본 1천 평 이상으로 분양 신청을 받았다"며 "200~300평만 필요한 우리들은 도심의 비싼 땅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올 7월 국토교통부는 신규 산업단지 분양 시 최소 면적을 990㎡(300평)로 지정해 공문을 내려보냈다"며 "앞으로 이 기준에 따라 분양하는 것은 물론 국가산업단지 2단계 개발에서 뿌리산업 소규모 업체를 위한 '협동화단지'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도심형 첨단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소규모 업체에 접근성과 구인이 용이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경석 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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