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달려야 제맛…동해안 7번 국도

차창 밖 푸른 바다, 걸으면 사람 내음

7번 국도를 달리다 우연히 마주친 해양산책로.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7번 국도를 달리다 우연히 마주친 해양산책로.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영덕 블루로드 B코스
영덕 블루로드 B코스 '푸른대게의 길'에서는 강구항, 축산항 어선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과 부지런한 어촌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새해를 맞는 곳으로만 여기던 동해안을 한 해가 지나가는 연말에 찾았다. 동쪽 해안가를 따라 길게 뻗은 7번 국도에 들어서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도 위에는 여유가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던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쉴 곳이 필요하다면 옆길로 빠져 동해안의 품에 안겼다. 동해안 여행을 부산에서 함경도를 잇는 7번 국도와 함께했다.

◆국도를 달린다

국도는 생소한 도로였다. 빠르고 편리한 게 최고라 여겼던 탓이다. 하지만 여행에서만큼은 빠른 것과 편리한 것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여행의 매력은 목적지가 아닌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7번 국도 위에서는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7번 국도 여행은 포항에서 시작했다. 포항 나들목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빠지면 28번 국도가 나온다. 28번 국도를 약 10분 정도 달리면 마침내 7번 국도로 갈아탈 수 있다.

국도의 매력은 '자유로움'에 있다. 7번 국도만의 매력을 꼽아보자면 언제라도 국도를 빠져나와 동해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도 위를 달리다 잠깐 쉬러 들어갔던 화진휴게소가 그런 곳이었다. 포항 시내에서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영덕 방면으로 20㎞쯤 달리면 화진해수욕장이 나온다. 그곳에서는 의도치 않게 장관을 맛볼 수 있었다. 휴게소 뒤편으로는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벼 제대로 보지 못했을 넓은 바다다. 갈대들과 어우러진 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화진해수욕장을 지나 10㎞쯤 달렸을까. 이번에는 바다 위를 걸어볼 수 있는 해양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바다 위에 설치된 길이 233m의 '해양산책로'다. 산책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파도소리와 함께 동해 특유의 푸른 바다 빛을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지만 마치 신비로운 어느 곳으로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관광 명소를 찾아서

계속해서 달릴 수만은 없다. 7번 국도는 513.4㎞에 달하는 그 길이만큼이나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관광 명소 몇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 찾은 곳은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에 위치한 풍력발전단지다.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약 1㎞ 떨어져 있다. 차를 타고 발전단지로 올라가는 길부터 발전기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그 첫인상은 '웅장함'이다. 하늘로 솟은 높이 80m의 바람개비는 한쪽 날개만 해도 41m에 달한다. 가까이 가면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가 '웽'하고 들린다. 24개의 발전기가 발전단지를 이루고 돌아가는 모습은 마치 해외 어느 곳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신재생에너지관 옆쪽 언덕 위는 풍력발전단지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끝없이 펼쳐진 동해를 향해 힘차게 돌아가는 발전기를 한눈에 담으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동해를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졌다. 풍력발전단지에서 내려와 동해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동해를 자세히 느끼려면 영덕 '블루로드'가 최선이다. 블루로드는 총 길이 64.6㎞의 해안 산책길이다. 총 4코스 (A, B, C, D 코스)가 있는데 그 중 B코스, '푸른대세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해맞이 공원에서 바닷가 쪽을 따라 작은 산 하나만 넘으면 총 코스 15.5㎞의 B코스 대장정이 시작된다. 산책로라고 해서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산길과 바위길을 넘어야 하는 블루로드를 본격적으로 걷고 싶다면 등산화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날 산책로에서는 5살 꼬마부터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B코스를 걷다 보면 어촌 마을과도 만난다. 대게원조마을이라 불리는 차유마을이다. 고려 말 영해 부사 정방필이 대게 산지인 이곳을 순시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넘어 왔다 하여 수레 차(車), 넘을 유(踰)를 써 차유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이날 차유마을은 지나다니는 사람을 볼 수 없을 만큼 조용했지만 마을에서 만난 한 어촌 주민은 "12월 중순만 돼도 대게를 먹으러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알려줬다. 제철인 대게를 맛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어촌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만족했다.

◆울진까지 달린다

영덕에서 약 1시간 정도 7번 국도 위를 달리다 보면 경북 울진군에 다다른다. 영덕군 병곡면 고래불해변에서 출발해 50분 정도를 달리면 망양정에 도착한다. 망양정은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망양정에 올라서면 왜 망양정에서 내려다본 풍광이 시나 그림으로 전해져 내려오는지 알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해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하였고 정철은 '관동별곡'을 통해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했다.

죽변항에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죽변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갈매기 소리가 들린다. 새벽이면 항구에서 물고기를 실어 나르는 배와 왁자지껄한 경매를 구경할 수 있다. 또 죽변항의 풍광을 감상하려면 항구 뒷길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하룻밤을 묵고 싶은 여행객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다. 7번 국도 위에는 해변 전망의 펜션이 즐비하다. 성수기에는 요금이 비싸고 빈방도 찾기 어렵지만 30일까지는 비수기다. 마음에 드는 해변 앞 펜션을 고를 수 있는 것도 지금쯤 떠나는 동해안 여행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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