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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중국 항일전선 불 지핀 영천 독립운동가 이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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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 조선의 젊은이 행진하네/'''/의용대 깃발이 휘날린다 나가자 피끓는 동무야/뚫어라 원수의 철조망 양자와 황하를 뛰어 넘고/피묻은 만주벌 결전에 원수를 동해로 내어 몰자/전진 전진 광명한 저 앞길로.'(조선의용대 군가)

어릴적 한학을 배우다 보통학교에 입학, 신학문을 접한 독립운동가 이원대(李元大)는 졸업 후 영천농업보습학교에 들어가 1년을 다녔다. 일제 압제와 수탈의 식민지 상황을 자각, 항일 인사들과 접촉하며 민족독립 의지를 키웠다. 이웃 동네 안병철의 권유로 이육사 등과 1933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안병철은 1931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이 중국 국민당 정부와 함께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1기로 1933년 4월 졸업하고 2기 학생모집차 국내 잠입중이었다.

이원대는 이 학교 제2기생으로 입학, 혁명간부 교육을 받고 졸업을 앞두고 1934년 2월 김구(金九) 요청으로 동기생 14명과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에 들어가 1935년 4월 졸업했다. 이 특별반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폭탄투척 의거를 계기로 설립됐다. 졸업 후 민족혁명당에 가입, 특파공작원으로 상해 등서 일본군 정탐, 일본인 관리암살 등 항일투쟁에 나섰다. 1937년 중일전쟁 뒤, 조선의용대원으로 한중 연합작전을 통한 대일 무력항전 투쟁을 벌였다. 1943년 3월 산서성 전투에서 일군에 붙잡혀 북경 일본군 헌병대로 압송돼 그해 6월 순국했다. 경북 영천에서 1911년 오늘 태어나 32년의 짧은 삶을 마쳤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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