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가 '경북의 혼(魂)'을 찾고, 정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확립해 널리 알리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지역의 혼을 찾고 가꾸는 과정에서 지역은 자연스레 통합의 힘을 키운다. 이를 통해 지역은 강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경북도의 설명이다.
이스라엘이 자국의 혼을 통해 작지만 강력한 나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경북은 다른 사례도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 상업도시 일본 오사카와 G2 경제 대국의 심장으로 자라난 중국 베이징이다. 이들 두 사례는 한 지역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 경제인들이 주목하는 오사카 상인정신
오사카 상인정신은 이미 각종 경영학 교과서가 다루는 한 대목으로 올라설 만큼 강력한 브랜드로 성장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상업도시로 성장한 오사카 정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통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사카성을 축조하는 한편, 전국의 유능한 상인들을 불러들여 쌀과 채소, 생선 등 중요한 식량자원을 오사카로 집중시킨 뒤 물산과 상거래의 중심지로 키웠다.
오사카는 육로'해상교통 기반시설이 확충되고 수공업과 농수산업이 발달하면서 일본 경제발전을 선도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일본이 재통일된 후 도쿄가 정치권력의 핵심 도시로 급부상했지만, 오사카는 일왕 거주지인 교토에 물자를 공급하는 배후도시로서 경제 중심지의 지위를 유지한다.
오랜 세월동안 '경제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오사카 상인들은 크게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오사카 상인들 특유의 정신적 지주목을 세우게 된다.
"돈을 남기는 것은 하(下), 가게를 남기는 것은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은 상(上)으로 여긴다." 오사카 상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목전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돈이나 가게보다 사람과 신용을 우선시한 오사카 상인들의 정신을 잘 나타낸 것이다.
오사카 상인정신은 ▷신용 ▷인간존중 ▷창의 ▷실용으로 집약된다. 서비스 정신, 근검절약, 외부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 등으로 이어지며 여기에다 인내심, 올바른 상도덕, 엄격한 금전관 등이 더해져 오늘날 '일본 경제의 혼'이라고 일컬어지는 오사카 상인정신의 기본을 형성했다.
오사카 상인들은 그들이 지켜온 정신을 외부에 나타내고 알리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일본 가게 문에는 무명천으로 된 걸개가 걸려 있다. 오사카 상인들이 원조인 노렌(暖簾)이다.
노렌은 일본 전역의 식당이나 가게, 심지어 회사 등의 입구에도 걸려 있다. 무명천엔 상호가 문양이나 그림으로 새겨져 있어 일종의 브랜드 역할을 하는 상징물이다.
오사카 상인, 아니 일본 사람들은 노렌을 통해 상인의 경영이념, 신용도, 직원 상호 간의 화합과 단결, 사회에 대한 책임과 공헌, 상품 이미지 등을 보여준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는 말처럼 자신의 일과 가게를 목숨처럼 생각하며 책임을 다한다는 뜻을 포함하며 전통과 자부심, 신용과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석문심학(石門心學)과 회덕당(懷德堂)은 오사카 상인정신을 완성한 '완결판'이다. 석문심학은 이시다 바이간(1685~1744년)이 일본 상인정신을 체계화한 것. 오늘날까지 일본 상인과 국민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회덕당은 1724년 상인 5명이 사재를 모아 설립한 일본 최초의 상인교육기관이다. 형식보다 실제, 이론보다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으며,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오사카대학 문학부 내 '회덕당센터'로 전승됐다.
이와 관련, 일본 경제사 전문가인 미야모토 마타오(宮本又郞)는 "새로운 발상,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연성과 개방성이 오사카의 장점"이라고 언급하며, "오사카 상인들은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가업과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항상 창의적 아이디어로 신상품을 개발하며 발전해왔다"고 했다.
오사카시는 오사카 상인정신을 도시 브랜드화하고 있다. 아시아 교류거점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오사카시는 상인의 도시답게 '오사카 기업가 뮤지엄'(大阪企業家博物館)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오사카 상공회의소 개소 12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1년 6월 개관한 이 박물관은 105인의 기업가를 소개하고 '상인정신'을 후세에 전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대국의 정신적 무기 베이징 정신(北京 精神)
오사카 상인정신이 자연스럽게 체계화됐다면 베이징 정신은 베이징 사람들의 노력으로 새롭게 정리됐다.
베이징 사람들은 국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위대한 민족정신이 필요했다. 베이징이라는 도시로 한정해도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도시정신 정립이 중요한 숙제였다.
베이징시는 2010년 5월부터 연구기관, 문화계, 지방정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거쳐 30여 개 표어를 추출해냈다. 베이징 정신 제정팀은 회의와 산하기관'단체의 서면의견을 바탕으로 5개 후보를 선정해냈다. 이 중에는 ▷애국, 창신, 포용, 후덕 ▷정대(正大), 포용, 화해, 일신(日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응집시키며, 최고의 선을 실천 ▷옛것을 이어 새날을 개척, 덕을 숭상하고 새로움을 추구 ▷포용과 꿈 등이 후보군에 올랐다.
베이징시는 2011년 9월, 인터넷과 우편 등을 통해 투표에 참여한 300만 명 가운데 175만 명이 지지한 '애국, 창신, 포용, 후덕'을 베이징 정신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2일, 8명의 베이징 시민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 정신을 공포했다. 애국은 베이징 정신의 핵심. 베이징 시민은 '나라의 흥망성쇠는 보통시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자세를 지녀왔으며 민족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베이징 사람들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응축적으로 집약했다.
창신은 낡은 관습을 타파해온 정신이며 2008년 올림픽 이래 경제 발전, 과학기술 진보, 도시 건설, 사회 관리 부문에서 개척자 역할을 해온 베이징을 체현해낸 것이다.
포용은 다민족 통일국가 형성과 발전의 역사에서 넓은 마음과 개방적 심리로 각 지역, 각 민족의 문화를 수용하며 융합해온 베이징 정신을 나타낸 단어. 세계적, 다원적 문화를 나타냄으로써 다양한 민족과 국민들이 베이징에서 발전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했다.
후덕은 3천여 년 도시 건설, 850년의 수도 건설 역사에서 보여준 베이징의 예의 바르고, 배려심 많은 품덕을 나타내는 것. 향후 세계 도시로서 우애, 공헌, 협동의 인문정신을 발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베이징시 교육위원회는 베이징 정신 채택 이후 각급 학교에서 '베이징 정신'을 알려왔고, 역내 언론인 '신경보'를 통해 '내 베이징, 내 정신'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베이징 정신을 홍보했다.
김호진 경북도 미래전략기획단장은 "베이징 시의 경우, 일정 지역의 정신과 가치관을 대표하는 정체성을 도출하기 위해 통합적 측면에서 접근한 점이 경북 정체성 연구와 유사하다"며 "베이징 정신의 도출과정과 이에 대한 시대적 가치 부여는 경북 정체성 연구과 홍보활동에 중요한 벤치마킹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철 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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