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에 휴가도 제대로 못 하지만 보육교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데 요즘 같아선 그만두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는 김모(32) 씨. 이틀 전 돌보던 아이가 넘어져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나면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인천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사건 이후 학부모들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엄마가 곧바로 어린이집으로 달려와 '신경 좀 써달라'는 말만 남긴 채 아이를 데려갔다. 김 씨는 "아이들이 다칠까 봐 하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니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돼 정작 내 아이들은 돌봐주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때문에 학부모들의 불신을 받는 현실이 가장 힘들다"고 울먹였다.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보육교사들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따가운 시선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달서구 한 어린이집에서 5년째 근무 중인 보육교사 김모(29) 씨는 "이번 사건으로 보육교사들도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오늘(16일) 우리 반 15명 중 4명이 별다른 이유 없이 등원하지 않았다"며 "몇몇 학부모들은 불시에 어린이집을 찾아와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고 갔는데,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고 섭섭하다"고 하소연했다.
북구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조모(27) 씨는 "가정에서는 엄마 혼자 아이 한 명 돌보기도 힘들어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는 만 0~2세 영아의 경우 보육교사 1명이 3명을 보살펴야 한다. 여기에 보육일지 작성 등 서류 업무와 평가인증기간이 되면 보육교사들이 청소는 물론 페인트칠까지 해야 한다. 이런 여건에서 원생 학대'폭행사건이 터지면 힘이 빠진다"고 했다.
어린이집 원장들도 당혹감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성구 한 어린이집 원장은 "하루종일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어 '나를 믿고 보내달라'고 했다. 10년 가까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4, 5명의 부모들이 당분간 아이를 집에서 돌보겠다고 통보했다. 심정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허탈하다"고 했다. 달서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들과 자주 대화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을 지켜보는 등 신경을 쓰고 있지만 혹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했다.
취재에 응한 많은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들은 가해 보육교사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대구어린이집연합회 조미경 국장은 "국민들은 물론 보육교사와 원장들도 이번 사태에 대해 함께 분노하고 있고 강력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CCTV 의무화 등 물리적인 시스템도 갖춰야 하지만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 개선, 인성교육 등이 선행돼야만 이번 같은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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