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옮기다 얼결에 박힌 가시. 손끝을 더듬어 보면 까슬까슬 만져지지만, 마땅히 뽑을 도구도 없고, 당장 병원으로 쫓아갈 만큼 아프지도 않아 그냥 두지만, 무심한 손길에 스치기라도 하면 찌릿한 통증이 전해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제 스스로 빠진 가시, 작정을 하고 칼로 아픔을 참아가며 주변을 도려내어 기어코 헤집고 뽑아 낸 가시, 무심코 던져두었다가 묵직한 아픔에 뒤늦은 자책을 하지만 이미 때를 놓쳐 어느 순간 곪아 버린 가시. 삶이 깊어질수록 마음속에 그런 예리한 가시 한두 개쯤 박힌 채 살아갑니다.
여기는 성서 계명대입니다. 대구시교육청의 또 다른 브랜드가 된 '책쓰기'를 경험하려고 무려 10대 1의 경쟁을 뚫은 120명의 초'중등 교사가 '2015년 전국 책쓰기 교육 교사 직무 연수'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방학이 주는 달콤한 휴식도, 소중한 사람과의 단란한 한때도, 해치워야 할 바쁜 일상도 뒤로한 채 전국에서 오신 선생님은 '마음속의 가시'를 빼고 있습니다.
'책쓰기'와 '가시 빼기',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연수에 참가하신 선생님들도 처음에 의아함, 황당함을 넘어 불쾌해하십니다. 다분히 의도가 숨겨진, 아니 대놓고 '네 마음속의 상처를 내어 놓아'라는 책쓰기 주제는 폭력에 가까워 보입니다. 꽁꽁 숨겨 놓고 피하고 싶은, 때로는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박힌 가시를 다시 찾아 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지라 선생님들의 저항은 당연해 보입니다. 멘토 교사로 참가한 저에게도 '가시'는 항암투병 중이신 친정엄마를 떠올리게 하여 가슴을 묵직하고 아리게 하는 주제라 피하고 싶습니다.
복잡하게 얽히고 부대끼는 마음을 뒤로한 채, 코팅지를 대고 서로의 얼굴을 그리고, 내 안의 '알 깨기' 작업을 진행하며,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조금씩 친해지며, 선생님들은 조금씩 내 안의 가시를 응시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가시를 빼기 시작합니다. 3년 전 급하게 떠나 버린 어머니에게 이별의 편지를 띄우고, 인간관계에서 상처 입은 자를 위한 '가시 빼기 매뉴얼'을 작성하고, 너무 일찍 하늘로 떠나버린 아내를 대신하고 코칭 공부한 경험을 살려 '코칭형 부모 방법'을 주제로 글을 씁니다.
5일이라는 짧은 연수 기간이라 충분히 가시를 응시할 수도, 빼어 버릴 수도 없습니다. 다만 가시를 피하고 싶은 나를 발견하여 행간에 더 많은 의미가 함축된 글을 쓰고, 나머지는 마음의 숙제로 가져가십니다. 시원하게 빼지도 못하면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괜히 상처만 헤집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들지만, 선생님들의 내공과 건강함으로 잘 아물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갖고 계신 역량으로 이번 책쓰기의 경험과 기술을 녹이고 숙성시켜서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삶을 쓰는 책쓰기 활동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스펙을 쌓는, 전문 저자가 되는 책쓰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생생한 삶을 담아내고, 아픔을 달래주며,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꿈을 키워 줄 책쓰기를 하시리라 믿습니다. '책'이 아닌 '삶'에 방점을 찍는 책쓰기 말입니다.
인문학도 그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전의 인문학이 '인문'이 아닌 '학'에 무게를 두었다면, 우리는 '인문'에 무게중심을 두고 싶습니다. 최소한 초'중'고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인문학은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무늬, 삶이 그리는 무늬인 '인문'(人文)을 고민하는, 책이라는 텍스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모든 안테나, 나의 삶, 내가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세상'에 방점을 찍는 인문학 말입니다. 마치 이제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린 남편이 연애시절 쓴 편지를 발견하고, 나누는 따뜻한 커피처럼 온기 있는 인문학 말입니다.
임채희 대구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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