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오후 안동시 송현동 안동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주택 밀집지역. 마을 안쪽 저지대에 설치된 지하식 소화전 뚜껑을 열자 벌겋게 녹슨 접속구가 민낯을 드러냈다.
소화전 바닥에는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물이 차 있었다. 소화전 내부 배수구가 막혀 물이 전혀 안 빠지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물이 얼면 소화전은 무용지물이 된다.
안동 중앙시장 인근의 다른 지하식 소화전도 마찬가지. 녹슨 접속구 아래 물이 흥건했다. 하루 수천여 명이 오가는 시장에 불이 났을 때 소방용수를 공급하는 시설이다.
동행한 한 소방대원은 긴 국자로 물을 퍼내며 "어제 오후 늦게까지 물을 퍼냈는데도 다시 물이 찬다"면서 "소화전에 물이 차면 부식과 작동 불량의 원인이 된다. 화재 출동이 빈번한 겨울에도 소화전이 얼지 않도록 물을 퍼내지만 이런 식으로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
안동지역 지하식 소화전 상당수가 부식과 배수불량 탓에 제역할을 못한다. 불을 끌 물을 제때 공급하지 못할 상황인데도 수리할 예산을 줘야 할 지자체는 뒷짐만 지고 있다.
안동소방서가 8, 9일 안동시 법흥지구 지하식 소화전 12곳을 표본 조사한 결과, 예외 없이 심각한 배수불량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되면 물을 개방하는 밸브인 '스핀들'에 녹이 슬어 물이 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며, 소방차와 연결하는 접속구에 녹이 슬면 물이 줄줄 샐 수도 있다. 혹한기에는 소화전이 얼어붙어 아예 쓸모없는 시설이 될 가능성도 크다.
안동소방서에 따르면 안동시내 소화전 655개 중 지하식 소화전은 29.7%인 195개나 된다. 안동소방서 관계자는 "현재 안동지역 지하식 소화전 대부분이 만든 지 20년이 넘었고, 배수불량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소화전 3개 중 1개는 제 역할을 못하는 셈이다.
소화전 교체가 시급하지만 지자체는 팔짱만 끼고 있다. 안동소방서는 지하식 소화전을 지상식으로 바꿔야 한다며 안동시와 교체 방안을 논의했다. 교체 비용은 한 곳당 200만원 정도. 소화전의 관리를 소방서가 맡고 있지만 수리와 교체 예산은 안동시 부담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전체 소화전 교체에 4억원 정도 든다. 올해는 교체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모두를 교체할 수 없어 소방서에 교체 우선순위를 정해 알려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예산 4억원 때문에 도심 전체가 화재 위험에 방치된 셈이다.
한편 경북도소방본부는 소방시설 점검이 부실했다는 본지 지적(7일 자 4면)에 따라 지역 내 17개 소방서에 '다음 달 13일까지 해당 지자체와 함께 소방용수시설 합동 정밀점검을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 경북지역 전체 지하식 소화전 1천800여 개도 점검 대상이다.
영주 마경대 기자 kdma@msnet.co.kr
안동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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