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비엔나 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건 할머니들이다. 비엔나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인간 CCTV' 즉, '도시의 감시자'들이 많다. 특히 할머니들은 불법 주차 차량, 불법 쓰레기 투기물, 도시 미관을 해치는 창문 이불 널기, 밤 10시 이후의 모든 야간 생활 소음 등등에 대한 민원성 고발자들이다.
한국이 CCTV 천국이지만 CCTV가 즉각적이지 않은 것에 비해 이곳 할머니 CCTV는 생동적이며 즉각적이다. 돈 들여서 굳이 CCTV를 설치하지 않아도 더 효율적이다.
한번은 이사를 위해 이삿짐을 아파트 밑에 잔뜩 내려놓았다. 일부 이삿짐을 차로 보내고 남은 이삿짐은 도로변 재활용 박스 옆에 놓아두었는데, 아파트 창문 너머로 서너 명의 할머니들이 나를 주시하는 모습이 얼른 비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샐 못 참고 할머니 한 명이 창문을 열어젖히고 "짐을 거기다 두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나도 질세라 "곧 옮길 겁니다"라고 대꾸를 했다. 차를 기다리는 한 시간여를 짐 옆에서 꼼짝 않고 서 있는 동안 두 명의 다른 할머니들로부터 빨리 짐을 치우라는 성화를 들어야 했다.
이민 생활 초년이었으면 외국인이라고 무시하고 괄시하느냐고 짜증이 났겠지만, 워낙 이곳 할머니들의 깔끔한 성정을 이해하는 탓에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는 여유도 생긴다.
비엔나의 할머니들이 조금 더 유별나긴 하지만 비엔나의 모든 사람들이 불법에 대한 감시자 노릇을 한다. 그야말로 이곳 법질서를 모르는 이방인에겐 살얼음판 같은 곳이다. 언제 어디서 야단을 듣거나 폴리자이(경찰관)에게 영문도 모르는 단속을 당할지 모른다. 늘 '심장 쫄깃한' 생활의 연속이다.
생활 질서 의식이 고도화된 나라일수록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이 불가능하다. 모든 게 불안스럽고 소심한 성격으로 바뀔 만큼 노심초사해야 한다. 이민 초년 생활엔 멋도 모르고 한국식으로 살았다. 하지만 타향살이를 점점 해보니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지 따져보며 살아야 했다.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조금만 그 질서에 익숙해지면 그다음부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고도의 생활 질서라는 게 참 이상하고 오묘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새로운 질서에 길들여지긴 어렵지만 한 번 길들여지면 새로운 습관이 되어버린다.
질서와 규범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 문제다. 그러나 질서와 규범 안에 들어가면 서로 믿음과 신뢰가 생기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신뢰를 쌓긴 힘드나 한 번 만들어진 신뢰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원리일 것이다. 새해에 바뀌는 게 많다고 하니 무엇이 바뀌는지 알아서 빨리 습관으로 삼는 게 서로 신뢰하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리라.
군위체험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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