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24시 현장기록 112] 주취자 신고 현장의 고충

우리 사회는 주로 술자리를 통해 친목도모가 이루어질 정도로 술자리가 많고 그만큼 술 문화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연말연시를 지나며 술자리 모임이 많아진 탓에 거리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취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시고 그렇게 인사불성이 되어 실수라도 하게 되면 폭행사건 등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술 취한 사람들로 인한 사건 사고가 매일 끊이질 않는다. 야간만 되면 파출소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들끓고 경찰관들은 술 취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바쁜 나머지 정작 본연의 업무인 교통사고 예방 및 범죄 예방은 뒷전이 되고 만다. 술 취한 사람을 관리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파출소에서 1만 가지 불만 사항과 하소연을 들어줘야 하고 심하면 욕설도 들어야 하며 순간의 방심이 예상치 못한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술 취한 사람은 경찰관들에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술 취한 손님이 식당에서 나가지 않는다"는 112신고가 들어온 일이 있었다. 현장에 출동해 보니 술 취한 남자 한 명이 식당 테이블에 앉아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인제 그만 귀가하시라고 설득하는데 이 남자가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 사람을 체포하여 파출소에 데리고 와 사건처리를 했고 또 그렇게 밤은 깊어져만 갔다. 이틀 뒤 부서진 집기 종류 및 가격 등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식당을 다시 방문했는데, 난동을 부린 그 남자가 식당을 찾아와 주인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채 사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술이 사람을 잡아먹어 마귀가 되었다가 술이 깨자 그제야 본래의 사람으로 돌아와 후회하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파출소 근무 중이었는데, 택시기사가 술이 깨지 않는 승객이 있다고 들어온 것이다. 그 승객은 술에 취해 목적지를 정확히 말하지 않았고, 주소나 가족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자 그때부터 욕설을 하며 사회의 불만사항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경찰관은 주소를 알려고 하소연을 들으며 설득하고, 택시 기사는 택시비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술 취한 사람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고….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술이 깨자 그 사람은 그제야 미안한 듯 사과를 하며 택시비를 내고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어갔다. 이렇게 간단한 주취자 사건도 많은 시간 동안 경찰력이 낭비되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손해를 끼치게 된다.

주취자 신고는 통상 경찰관 2명이 1, 2시간을 소요하여 처리하고, 때로는 사건이 확대되어 큰 건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또 정말 긴급한 신고 사건이 발생해도 경찰관이 신속히 출동하지 못해 치안 공백도 발생한다. 음주로 인한 폭행, 재물손괴, 음주운전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심지어 경찰관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있다. '주취자'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흔들 정도로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힘이 많이 든다. 그렇게 사건 사고 때문에 하룻밤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날이 밝아올 때쯤 아침 해를 보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에 퇴근 준비를 한다.

지난해 10월 20일 대구의료원에 주취자 치료 및 보호를 위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가 설치되어 운영을 시작하였다. 대구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대구시, 경찰, 의료기관, 소방기관이 협력하여 주취자의 치료와 보호를 통해 상습 주취자를 보호, 치료, 상담하는 곳이다. 이미 서울에는 5곳의 병원에 응급의료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주취자 관리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인사불성의 주취자 신고가 있으면 경찰관이 출동하여 주취자가 만취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치료적 접근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119구급대에 협조하여 주취자를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로 이송한다. 주취자는 응급의료센터에서 음주 해독 및 병원에 상주하는 경찰관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술이 깬 후에는 보호자에게 인계되거나 자진 귀가할 수 있으며 알코올 중독에 대한 진단도 받을 수 있다.

대구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가 운영되면서 주취자에 대한 체계적 보호 및 효율적 관리가 가능해졌고,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들도 주취자에 대한 일 처리가 간편화되면서 본연의 업무와 112신고 사건 처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고, 이는 주민들이 체감하는 범죄 안전도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대구의 다른 곳에도 주취자 응급의료센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오늘 밤도 술 취한 사람과 씨름하느라 고생하는 전국 경찰관들이 힘을 내시길 빈다. 또 술 탓에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깨뜨리고 나아가 생업까지 망치는 사람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병욱 대구 달성경찰서 다사파출소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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