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작가 임성한이 또다시 안방극장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MBC 일일극 '압구정 백야'를 파격적인 스토리로 이끌며 연일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중. 이 드라마는 지난해 10월 방송을 시작한 후 밋밋한 스토리로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렀다. 항상 파격적인 내용으로 시청률을 높였던 임성한 작가의 스타일과 달라 '집필 방향을 바꾼 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신년에 들어서 또다시 '막장 카드'를 꺼내 들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청률은 급상승해 10%대 중반에 이르렀다. 하지만, '혹시나 했더니 여전히 막장'이란 혹평 역시 이어지고 있다. 임성한 작가 드라마의 특징을 살펴봤다.
▷'임성한표 데스노트', 귀찮은 캐릭터는 고민 없이 죽음으로 하차
'데스노트'란 2006년 국내에도 개봉돼 흥행에 성공한 일본 영화의 제목이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으로 죽음의 신으로부터 받은 노트에 특정인물의 이름을 적으면 일정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설정이 눈에 띈다. 임성한 작가가 드라마 속 캐릭터를 손쉽게 죽음으로 처리하거나 갑작스레 이야기의 중심에서 배제되도록 설정해 하차시키는 일이 잦아 네티즌들 사이에서 '임성한표 데스노트'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이 많아졌다.
'압구정 백야'에서도 15회 만에 주요 캐릭터를 연기한 심형탁(백영준 역)을 교통사고로 사망 처리해 '임성한 작가가 또다시 살생부를 꺼냈다'는 말이 나왔다. 이어 이달 3일에는 또 다른 주연급 연기자 김민수(조나단 역)를 사망으로 하차시켰다. 불량배와의 사소한 다툼 끝에 한두 차례 주먹이 오가다 쓰러져 돌연 세상을 떠난다는 설정. 앞서 임성한 작가는 2013년 MBC에서 방송된 전작 '오로라공주'에서 13명의 주요 캐릭터를 황당한 설정으로 하차시켰다. 먼저, 독고영재가 별다른 설명 없이 드라마에서 빠진 것을 시작으로 변희봉이 수면 중 유체이탈을 경험한 후 교통사고로 3개월간 투병하다 사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극 전개에 어느 정도 필요한 설정이려니 했지만 이후로 진행된 전개가 문제가 됐다. 이야기의 주요 배경이 된 오씨 집안의 며느리 세 명이 한꺼번에 남편과 이혼해 미국으로 떠난다는 과장된 설정을 보여준 게 시작이다. 이로 인해 주요인물을 연기했던 이상숙'이아현'이현경 등 세 여배우가 동시에 '오로라 공주'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후 이들의 남편을 연기한 손창민과 오대규도 '전 부인들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떠난다'는 설정하에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또 다른 배우 박영규도 전 부인의 위암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건너간다며 '오로라 공주'에서 삭제됐다. 변희봉에 이어 임예진도 유체이탈을 경험한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는 설정하에 드라마에서 빠졌다. 그보다 앞서 2011년에 방송된 SBS '신기생뎐' 역시 여러 캐릭터를 실족사 등 갑작스럽게 사망으로 처리해 문제가 됐다. 2005년 SBS '하늘이시여'에서도 배우 이숙이 웃다가 죽음을 맞는 등 파격적인 설정을 보여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시청률? 막장 코드 하나에 두 자릿수 껑충 예삿일
'압구정 백야'가 그랬듯 '신기생뎐' 역시 초반에 부진했던 시청률을 막장 코드를 이용해 끌어올렸다. 남자의 복근에다 빨래를 한다는 설정, 기방 손님과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는 규율을 어겼다고 현대판 기생을 멍석말이해 구타하는 장면 등을 내보내 '대놓고 노이즈 마케팅을 하냐'는 혹평을 들었다.
2009년 전파를 탄 MBC '보석비빔밥'에서도 자식들이 합세해 친부모를 쫓아내려는 장면을 보여줘 빗발치는 항의를 받았다. '하늘이시여'는 딸을 버린 엄마가 그 딸을 그리워하며 며느리로 맞는다는 설정 자체가 문제가 됐다. 이 외에도 특정 직업에 대한 비난이 담긴 대사를 내보내고, 국정 홍보 논란까지 일으키는 등 방영 내내 갖은 이슈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시청률 상승 효과도 누렸다.
2004년 작 MBC '왕꽃 선녀님'은 신내림을 받는 장면 및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 등으로 가족들이 함께 보는 시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들었다. 또한, 입양아에 대한 부적절한 묘사로 입양협회 단체로부터 격한 항의를 들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반복해서 불거지다 결국은 임성한 작가가 집필을 중단하고 또 다른 작가가 구원투수로 투입돼 방송을 마쳤다.
또한, 본인 드라마의 주요 타깃층이 될 수 있는 중년 여성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하며 확고한 위치를 확보한다. 개연성이나 설득력은 부족해도 중년 여성 시청자들이 적당히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을 만한 스토리로 일종의 '맞춤형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시청률을 위해 '막장 코드'든 뭐든 가리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전개를 바꿔버릴 수 있는 과감함을 가진 작가다. 이처럼 본인의 상업적 성취를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저돌성을 보이는 이는 유일무이하다.
▷개성으로 봐야 하나, 직무유기로 봐야 하나
이쯤 되면 임성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진다. 과연 작가의 개성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직무유기로 판단해야 할까.
특정 캐릭터가 혼자 노래 부르며 노는 장면을 3, 4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라면 하나를 놓고 이어지는 대화를 5분에 걸쳐 진행시키는 등 아무 의미 없는 장면을 시시때때로 내보내는 건 과연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일까, 아니면 작가의 기획 의도일까.
어느 작품에서도 써주지 않는 연기자 백옥담을 자신의 조카라는 이유로 '아현동 마님'부터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 '압구정 백야'에 꾸준히 캐스팅해 주요 캐릭터로 활용하는 건 사적인 욕심일까,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백옥담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까.
제작진과 출연진 앞에 모습 한 번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원고를 통해서, 간혹 문자를 통해서만 대화하는 소통법은 좋은 작품 집필을 위한 자신만의 방식일까, 반대로 사회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비뚤어진 이의 고집일까.
방송사 역시 매번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편성하기 전 심각한 고민을 한다. 임성한 드라마의 작품성을 높이 사는 이는 극히 드물지만 일단 편성하고 나면 시청률을 끌어올려 광고 수익이 나오게 만들기 때문에 최종 선택을 두고 머리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방송사의 상황을 잘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가 임성한 작가다. 그렇다면, 임성한 작가는 방송사가 원하는 자신의 특성을 꾸준히 살려 나가는 게 맞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작가 본연의 자세를 되찾고 좋은 작품을 쓰는 데 집중하는 게 맞는 걸까.
어찌 됐든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 혹평을 가한다고 해도 이 드라마를 보는 이들까지 욕하는 건 쉽지 않은 게 사실. 여러모로 논란을 만드는 작가와 이를 부추기는 이들, 또 상황이 맞아떨어져 '괴물 같은 드라마'가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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