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눈물이 말하는 것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晋州) 남강(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이 시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국어 교과서를 집필할 때도 실었던 박재삼 시인의 '추억에서'이다. 이 시에서는 어른이 된 아들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추억한다. 추억이라는 것은 대개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거나, 아니면 아주 힘겨웠지만 이제는 다 지나가 버려서 다시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만들어낸 희미하지만 아름다운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시에 있는 추억은 아주 즐거웠던 기억도 아니고, 아름답게 포장된 기억도 아니다. 그냥 정직하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시인의 기억을 따라가 장터에서 파장이 되도록 고기들을 다 팔지 못한,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진주 남강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물과 마주칠 때면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나 역시도 울컥해진다.

예전 어머니들은 일이 힘들고 몸이 고될수록 더 악착같이 일하셨고, 더 강하게 보이려고 노력을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들은 육체적 고통에는 강하셨다. 그러나 일 때문에 자식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안타까움, 자식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고단한 살림은 한이 되었다. 그 한이 불쑥 솟아오를 때 남몰래 글썽이는 눈물이 되는 것이다. 자식들은 어릴 때는 몰랐다 하더라도 크면서 그 눈물이 말하는 것을 알게 된다. 훈련소에서 유격을 받으면서도, PRI를 하면서도 울지 않았던 아들은 '장한 아들 두었다고 자랑하시던/ 그 말씀 손에 쥐고 여기에 섰다' 하는 군가 대목에서 울컥해서 눈물을 글썽이게 된다. 자식이 어머니의 눈물을 이해하는 순간 어머니의 눈물에 담긴 사랑은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에 어머니의 눈물은 처량하게 '글썽이던' 것이 아니라 마침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이 된다. 내가 '추억에서'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글썽이고 반짝이던'에 담긴 뜻 때문이다.

일요일에 텔레비전에서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을 보았다. 그런데 몇몇 출연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자니 너무나 불편해서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그 프로그램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 이유가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은 '글썽이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통 앞에 자기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그냥 '질질 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과분한 자리에 부적절하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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