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삼시세끼'는 요즘 방송계에서 가장 '핫'한 콘텐츠다. 비지상파라는 취약점을 극복하고 시즌2에 해당하는 '어촌 편' 방송을 시작한 지 2회 만에 시청률 10%대(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광고제외 기준)를 뛰어넘었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도 평균 10%대에 도달하는 경우가 드문 게 현실. 비지상파에서 10%의 기록을 올렸다는 건 체감시청률로 따졌을 때 지상파의 20%와 맞먹는다고 볼 수 있다. '삼시세끼'가 그만큼 폭넓은 연령대의 시청자들에게 고루 어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과 함께 연출자 나영석 PD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KBS에서 '1박2일'을 '국민 예능' 대열에 올려놓고 CJ E&M으로 이적한 게 이제 2년. 그 사이에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에 이어 '삼시세끼' 시리즈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나영석 월드'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나영석 PD가 만들어내는 예능 프로그램의 특징을 살펴봤다.
▷ 예능의 여백을 살려라!
나영석 PD의 연이은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남이 하지 않은 것'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과감함이다. KBS 시절 '1박2일'을 되새겨보자. 당시 이 프로그램은 '야생 버라이어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멤버들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았다. 로드쇼의 느낌을 주면서 대한민국 곳곳을 찾아가 주민들을 만나고 또 다양한 볼거리를 알렸다. '복불복 게임'을 만들어 추운 겨울철에도 야외취침 벌칙을 주는 등 당시 방송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호응을 끌어냈다.
CJ E&M으로 이적한 후 내놓은 '꽃보다 할배' 역시 '새로움'이 부각된 프로그램이었다. '1박2일' 때 한 차례 시도해 노하우가 쌓인 '여행' 콘셉트에 예능계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원로급 배우들을 캐스팅해 방송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배낭을 짊어진 원로배우들의 세계여행이라는 기획 자체만으로 신선함을 줬고 절묘하게 캐릭터를 살려 큰 재미를 끌어내는 실력 역시 박수를 받을 만했다. 흔한 여행 콘셉트에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신의 한 수'를 더해 성공적인 콘텐츠를 내놨다.
'삼시세끼'는 '꽃보다 할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외딴 시골집에 연예인 두어 명을 덜렁 남겨놓고 세 끼 밥을 지어먹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션이라고는 메뉴를 지정해주는 정도가 전부. 출연자들이 널브러져 쉬고 있으면 그 모습을 찍고 부지런히 일을 하면 그 뒤를 카메라로 따라다닌다. 카메라 앞에서 출연자들이 "이렇게 찍어서 방송이 되는 거냐"고 물을 정도로 황당한 기획이다. 아무리 '리얼 예능'이라고 해도 포인트가 될 만한 재미 요소를 무기로 들고 가야 하거늘 도대체 '삼시세끼'에서는 그럴 만한 특징을 찾아내기 힘들다. 온통 여백뿐이다. 그런데도 나영석 PD는 이 '텅 빈' 기획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출연자들뿐 아니라 카메라에 잡히는 동물과 소품 하나까지 특징을 잡아 캐릭터화했다. 여기에 절묘한 편집과 자막으로 에피소드 하나 없는 '텅 빈 영상'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사실 여백이란 활용하기에 따라 어떤 선이나 색깔을 채워도 좋은 공간. 여백을 주고 그 공간을 채워나가는 사람의 재주에 따라 그림 전체의 느낌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영석 PD의 재주가 그랬다. 기본적인 설정만 던져놓고 편하게 풀어진 상태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잡아내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시즌제 예능 장점 부각 개척자
나영석 PD로 인해 '예능 프로그램도 국내에도 시즌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앞서 나영석 PD는 KBS에서 퇴사한 후 한 편의 프로그램이 잘 되면 잘될수록 끊임없이 완성품을 내놔야 하는 기존 방송사들의 시스템에 아쉬움을 표했다. 쉬었다 가면 더 힘을 낼 수도 있을 텐데 '흐름이 끊어져선 안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지치더라도 '온 에어' 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게 방송계의 현실. '1박2일'처럼 전국 각지를 돌며 촬영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그 피로도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나영석 PD가 방송계의 거대 권력인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이적을 결심하기까지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됐던 건 당연한 일이다. 한 템포 늦추고 쉬면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내놓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CJ E&M이 제공한 '쉬어갈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나영석 PD는 승승장구했다.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 등 한자리에 모으기 힘든 출연자들의 스케줄을 고려해 조합이 가능할 때는 '꽃보다 할배'를, 힘들 때는 여배우들을 모아 '꽃보다 누나', 또는 젊은 스타들을 데리고 '꽃보다 청춘'을 선보였다.
해외여행이라는 기본적인 콘셉트에 '꽃보다'라는, 시리즈를 강조하는 타이틀을 사용해 '연속성'을 인지시켰고 출연자들을 교체해 매번 색다른 느낌까지 줬다. 그리고 '예능도 시즌제가 가능하며 오히려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을 증명했다. 나영석 PD가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 시리즈를 번갈아 내놓는 동안 젊은 시청자들을 주로 끌어들이던 CJ E&M의 채널 인지도가 중년층 사이에서도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절묘한 캐스팅의 미학
절묘한 캐스팅도 나영석 PD의 장점 중 하나다. 예능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되던 이를 캐스팅해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수차례 내놓으며 '스타 제조기'란 말을 듣고 있다. 단순히 출연자의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인물로 만들어놓으며 동반상승효과를 누리게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사실 '꽃보다 할배'의 원로 배우들을 '모시고' 해외로 떠난다는 건 제작진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 실제로 제작진은 이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흥미성 미션을 제시했다가 "그런 건 안 한다"는 완강한 원로들의 태도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방송분량을 걱정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 그런데도 나영석 PD는 이 '웃지 못할 일'을 '웃기는 일'로 편집해 보여줬다. 그러면서 꼬장꼬장한 원로 배우들을 '고약한 노인네'가 아닌 '귀엽고 사람 좋은 할배'로 포장했다. 여기에다 상대적으로 젊은 배우 이서진을 '할배'들 때문에 고생하는 인물로 끌어들여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내놓은 기획이겠지만, 기발한 편집을 통한 '후속조치'도 우수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기본적으로는 이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고, 또는 (이서진의 경우) 기획의도를 속여가면서까지 캐스팅해 프로그램을 성사시킨 추진력의 승리다.
'삼시세끼-어촌편'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미 넘치는 배우 차승원을 출연시켜 놀라운 요리실력을 과시하게 만들었다. 데뷔 21년차에 단 한 번도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준 차승원은 요즘 친근한 이미지까지 얻으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구수하고 서민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유해진의 섬세하고 지적인 면을 끄집어낸 것, 최초 멤버였던 장근석의 돌연 하차 후 손호준을 급히 캐스팅해 차승원-유해진 사이에 매치시키면서 시너지 효과를 유도한 것 역시 나영석 PD의 감각이 빛을 발한 결과다.
정달해(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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