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요원 된 동네 건달 잔인하고 통쾌한 액션
# 60, 70년대 스파이 영화 끊임없이 비틀고 패러디
매튜 본 감독은 이전부터 함께 작업해온 그래픽노블 작가 마크 밀러와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요즘 스파이 액션이 지루해졌다"며 빤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스파이 액션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마크 밀러의 그래픽노블 '킹스맨: 시크릿 서비스' 원작을 영화화하기로 했다. 과연 애초 그들의 기획대로 아드레날린이 솟는 진짜 재미있는 오락 스파이 액션영화가 탄생했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잔인하다. 영화의 폭력성은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판타지로 그려져, 난폭한 피의 향연을 거리를 두고 관망하며 낄낄거리게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인 별 볼일 없는 루저이자 하층민 청년이 점잖은 체하지만 사회를 가혹하게 말아먹으며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상류층과 권력층을 한 방 먹이는 데서 적잖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한마디로 영화는 난폭하지만 통쾌하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액션과, 영화의 관행을 탈피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게 튀어나가는 상상력의 극단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신나고 재미있다.
에그시(태런 애러튼)는 높은 IQ를 가지고 있고 주니어 체조대회에서 우승했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해병대도 중도 하차했으며, 동네에서 패싸움이나 하고, 직장은 가져본 적도 없이 별 볼일 없이 산다. 대충대충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패싸움에 말려들어 경찰서에 구치되자, 전설적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가 그를 구제한다. 에그시의 탁월한 잠재력을 알아본 하트는 그를 전설적 국제 비밀정보기구 킹스맨 면접에 참여시킨다. 에그시의 아버지도 킹스맨의 촉망받는 요원이었으나 하트를 살리기 위해 죽었다. 목숨을 앗아갈 만큼 위험천만한 훈련을 통과해야 하는 킹스맨 후보들 가운데 최종 멤버 발탁을 눈앞에 둔 에그시는 최고의 악당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과 마주한다.
영화는 1960, 70년대 스파이 영화의 영향권 하에 있음을 대놓고 드러내며, 이를 끊임없이 비틀고 패러디한다. '007' 시리즈의 캐릭터 유형이나 소품, 세트를 많이 참고하였는데,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가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고서 현대적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쿨하게 악당을 처치하는 장면에 향수를 가진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패러디 정신에 연신 놀라게 될 것이다.
영화 오프닝에는 1980년대를 호령했던 잉글랜드 록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머니 포 낫싱'(Money for Nothing)이 MTV 화면처럼 전개된다. 어딘지 촌스럽고 요란하지만 동시에 정겨운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영화 초반부에 악당 발레타인에게 잡혀서 일찍 사망하고 마는 제임스 아놀드 박사 역은 놀랍게도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의 배우 마크 해밀이다. 앳된 청년이 이제는 노년이 되었다. 반가움과 함께 애틋하고도 허망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영화 후반부에 정치 지도자들이 원탁회의를 하는 장면은 명백히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1964)나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를 참조한 것이다. 무지막지한 악당 발렌타인은 샤무엘 L. 잭슨의 대표작 '펄프 픽션'(1994)의 깡패 캐릭터를 응용하여 그가 이전에 했던 대사들을 감칠맛 나게 패러디한다. 발렌타인의 충실한 오른팔 가젤(소피아 부텔라)은 아름답지만 절단된 양쪽 다리가 치명적인 칼날로 되어 있어 '킬빌'(2003)에서 우마 서먼이 휘두르던 일본도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여 활용한다. 가젤은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성 악당으로서 여성 액션의 신기원을 열어 보인다.
영화는 196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대중문화 아이콘들의 향연을 펼치는데, 숨겨진 것을 하나씩 발견해내는 재미가 깨알 같다. 감독이 직접 밝힌바, '올드보이'의 장도리 신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3분 44초 길이의 원 신 원 테이크 멀티 액션은 잊기 힘든 명장면이다. 멋진 슈트의 영국 신사 콜린 퍼스가 유연하게 펼치는 이 액션 장면은 잔인하고 코믹하며, 또한 통쾌하다.
무엇보다 호탕한 것은 네오카스트 사회가 되어버린 글로벌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기득권층의 우월의식을 박살 내는 저항 정신이다. 뒷골목 출신 청년이 엘리트들의 집합체인 킹스맨에 합류했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이고, 악당이 불평등한 인류를 말살해 버리겠다는 프로젝트는 허황되다. 하지만 현실의 모순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영화 속 환영의 세상으로나마 잠시 탈출하여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게 된다는 것이 오락영화가 가지는 힘이다.
발렌타인데이에 악당 발렌타인이 등장하는 현란하고도 잔인한 영화를 본다는 게 뭔가 아이러니하지만,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영화가 연인을 더욱 단단하게 맺어주게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게 어떨까.
<영화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