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망각을 모르는 너, 이제 날 좀 잊어주겠니?…SNS 엑소더스

인터넷 기록 지우고 싶은 사람들

우리는 기록하기 편한 시대를 살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내가 먹은 음식과 여행 사진, 남편과 자식 자랑, 회사 이야기와 불만 등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공유한다. 하지만 글과 사진으로 남겨진 디지털 기록은 내 생각과 감정, 상황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올린 글이라면 지우면 그만이지만 이 내용이 이미 공유돼 널리 퍼져 나갔다면 아주 난감해진다. 최근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 디지털 기록를 전문적으로 지우는 업체까지 등장해 '디지털 세탁'을 돕고 있다.

◆SNS 속 과거 기록, 항상 즐겁지는 않아요

과거 기록은 때때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특히 헤어진 연인과 관련된 기록이라면 새로운 사랑에 방해물이 된다. 결혼 3년차인 A(30) 씨는 남편과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원래 페이스북을 잘하지 않았던 A씨는 별 생각 없이 남편을 페이스북 친구로 추가했는데 난감한 일이 생겼다. 아내의 페이스북 사진첩을 살피던 남편이 수년전 옛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올린 사진이 아니다. 사진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남편의 마음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 페이스북에는 '태그'(tag) 기능이 있어 설정 방식에 따라 친구가 태그한 사진이 자동으로 타임라인에 노출된다. 태그 된 사진을 미리 검토하는 기능이 있지만 페이스북 조작에 서툰 A씨는 이런 기능이 있는지 몰랐다. A씨는 "내가 남편이었어도 화가 많이 났을 것"이라며 "페이스북 같은 SNS는 불필요한 갈등을 만든다. 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인터넷은 망각을 모른다. 한 번 남겨진 디지털 기록은 지우지 않으면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 이를 활용해 1년 전 '오늘'의 일을 기억해 알려주는 앱도 있다. '타임홉'(Timehop)은 페이스북, 포스퀘어,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를 검색해 1~3년 전 오늘 내가 올렸던 글이나 사진을 알려주는 무료앱이다. 하지만 모든 추억이 유쾌한 것은 아니다. 헤어진 애인과 찍었던 사진이나 회사 상사에게 왕창 깨졌던 날의 슬픈 기록이 '1년 전 오늘'로 떠오르기도 한다.

◆잊혀질 권리를 논하다

최근에는 '잊혀질 권리'가 인터넷 시대의 새 권리로 떠오르고 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정보의 주체가 인터넷상에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삭제하거나 확산할 수 없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할 때 언급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 교수인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는 저서 '잊혀질 권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디지털 메모리를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 경험은 우리가 죽는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죽음 뒤에도 남아있다. 디지털 메모리를 통해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으며 여기서 탈출할 수 없다." 사람은 늙어도 인터넷에 남겨진 데이터는 늙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결이 잊혀질 권리에 불을 지폈다. 스페인의 한 변호사는 2009년 '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면서 1998년 빚 때문에 집을 내놨다는 기사가 여전히 떠돌아다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기사 검색 결과를 구글에서 지워달라는 소송을 냈고, 사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였다.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법률 개정안이 등장했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2013년 2월 대표 발의한 저작권법'정보통신망법의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이 온라인 업체에 자신의 저작물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으며, 이 요청을 받은 사람은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바로 삭제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개인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로 확대해석될 수 있다는 논란의 소지가 있어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