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松)'죽(竹)은 혹한에도 늘 푸르고, 매(梅)는 잔설 속에서도 꽃 피우므로 세한삼우(歲寒三友)라 일컫는다. 선비들은 그중에서도 매화를 더 귀히 여겼나 보다. 퇴계 선생은 매화를 사랑한 나머지 100편에 가까운 매화 시로 「매화시첩」을 엮었고, 일생에서 마지막 날도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일렀을 정도다.
곧 설이다. 오래전 설날 뒤에 아주 특별한 매화를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게 경남 산청군 단속면 운리 탑동 마을이자 지리산 웅석봉(熊石峯) 남녘 기슭 단속사지(斷俗寺址)에 있는 정당매다. 옛 단속사 금당 앞에 삼층석탑 두 기가 서 있고, 그 뒤에 자리한 고매는 정당매각(政堂梅閣)과 함께 1982년 11월10일 보호수로 지정한 안내판이 지켜준다. 워낙 나이가 많아 몸통의 네 주간이 고사했지만 용케도 남은 몸통 밑동에서 이미 왕성하게 자란 뿌리직경 22㎝와 16㎝ 두 줄기에서 또다시 세 가지가 동·서·남향으로 뻗었다.
외과수술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복원한 만큼 정당매는 장수하는 셈이다. 양지바른 곳이라 그날도 만동의 햇살을 이끌어 곧 터질 듯 봉곳봉곳한 꽃망울은 얕은 바람에도 진동할 그런 매향을 꿈꿨고, 대단한 수량임을 말해주듯 조롱조롱 수없이 매달려 있었다. 아쉬움에 그 뒤 또다시 찾았다. 고매는 600년의 자존심을 맑고 희게 활짝 꽃피워서 온 세상이 훤했다. 게다가 하늘을 대청소했었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다. 땅바닥에 누워 하얗게 휘어진 가지를 하늘 배경에 대입시켰고, 매향을 한껏 만끽했다.
이 매화는 통정 강회백(姜淮伯·1357~1402)이 절에서 글을 읽으면서 손수 심었고, 그 뒤 벼슬이 정당문학에 이르러 '정당매'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 당시 100살을 훌쩍 넘겨서도 기록됐으니 매격(梅格)과 원기 또한 왕성했으리라.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그는 정당문학 겸 대사헌을 지냈다. 『동문선』에서 '단속사견매'(斷俗寺見梅) 시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비유했을까? '한 기운이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나니/천심을 섣달 전의 매화에서 볼 수 있네/스스로 큰 솥에 국 맛을 조화하는 열매가/부질없이 산중에서 떨어졌다 열렸다 하네.' 지금껏 버티느라 수술도 했지만 다행히도 저 산비탈서 2세 몇 그루가 자랐다. 남다른 버릇에 또 크기를 쟀다. 큰 것은 뿌리직경이 40㎝에 키는 8m, 모양새 좋은 수폭도 키 높이와 같았다. 그날 마이산을 향할 때 경호강 서편으로 빙판도 있었지만 줄곧 흥이 난 하루였다. 지금은 어미와 함께 훌쩍 컸으리라. 설 지나면 전국적으로 매향이 봄을 진동할 게다. 순천의 선암사 토담을 껴안은 홍매화도 볼만하다. 이마저 두 번 만에 붉고 진한 매향을 음미했다. 대구수목원에도 정당매 후손이 있다.
<시인·전 대구시앞산공원관리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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