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흔 번째 아버지 기일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세계 위인전집과 54색 크레파스를 마지막 선물로 남긴 채 돌아가셨다. 중학생이 되고 갈래머리 여고생이 될 때까지 나는 그 크레파스와 위인전을 아버지처럼 꺼내보곤 했다. 오랫동안 이삿짐 박스에 담긴 채 나를 따라다니던 그 선물이 어느 순간 흐지부지 흐트러진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아련해질 무렵 나도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부모가 되었다.
돌아보면 아버지의 부재는 늘 부끄러움이었는데 마치 내 잘못인 것 같아 나 스스로 기가 죽어 지냈다. 어린 시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서러움과 외로움이 응어리로 남아 아직도 내 몸속을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느낀다. 유독 이맘때가 되면 그때가 생각나는데, 어린 나이에도 명절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집집마다 그득한 웃음소리 속에 친지들이 오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곤 했다. 엄마랑 단출한 어린 남매에게 명절의 의미는 우리를 한없이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이면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선명해져 어린 나는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 모습이 더 안쓰러워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참 길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번 기일에는 3대가 절을 올렸다. 온 가족이 모여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마치 살아남은 자들끼리 가장 큰소리로 웃는 것이 지난날을 위한 최선의 위로인 것처럼 웃다가 헤어졌다. 설을 손꼽아 기다리기보다는 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기억 속의 어린아이를 이제는 꼭 보듬어주고 싶다. 요즘 말로 결손가정의 아픔이 나를 구석진 곳으로 몰아세우곤 했던 그때가, 구석을 파고들었던 그 어둠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 시는 어둑함을 고백한다.
이제 곧 설이다. 아직도 섣달 그믐밤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설화 같은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늦은 밤 옷고름을 매고 묵은세배를 올리는 시댁에서 설을 맞이할 것이다. 문득 명절 장을 보다 어린 나를 닮은 또 다른 어린 마음에 손이 닿는다. 설날 아침 어디선가 눈물이 맺힐 가정들이, 이맘때면 더 컴컴해져 서로를 등지고 앉겠지. 남몰래 흐르는 그 눈물을 누가 닦아 줄 수 있을까. 정성껏 준비한 차례상에 둘러앉아 가족 간에 온기를 나눌 수 있음이 새삼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 정겨움이 고요한 물결이 되어 소외된 마음에 전해질 수 있었으면 한다.
어설픈 솜씨긴 하지만 이번 설에는 흰 가래떡을 넉넉히 썰어야겠다. 봉지마다 정갈한 흰떡을 나누며, 홀로 손자를 키우시는 아랫집 할머니 댁에도 설날 아침만은 아이의 웃음이 고명처럼 올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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