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패륜의 손가락질

효경(孝經)의 첫 장에 실린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공자의 말처럼 효의 뜻을 명확하게 풀이한 것도 많지 않다. 몸과 터럭,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자식이 몸을 상하면 누구보다 부모가 마음 아파하니 부모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행동을 효의 첫 머리로 삼은 것이다.

충효(忠孝)가 기본 이념인 유교를 국교로 한 조선은 효에 역행하는 이른바 패륜 범죄를 엄격하게 다스렸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 교화 책인 삼강행실도는 당시 진주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세종이 간행토록 지시한 것이었다. 이후 성종과 선조, 효종을 거쳐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 중간됐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밀양 부(府)에서 박군효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동생과 마을 사람들은 박군효를 잡았다가 풀어주고 관에 고발도 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박군효를 능지처참하고, 밀양을 부에서 세 단계나 아래인 현으로 격하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풍속교화를 담당한 관리까지 처벌해 교훈으로 삼았다.

고대 중국에서는 패륜 범죄가 일어나면 죄인의 사형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살던 집을 헐어 연못으로 만들었다. 이를 파가저택(破家瀦澤)이라 한다. 또, 존속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나 동네 사람에게 패악을 저지르면 회의를 거쳐 멍석말이라는 뭇매질을 통해 버릇을 가르치거나 동네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온갖 범죄가 일어나는 요즘 세상에서는 오히려 고발이나 고소를 당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당연히 통용되는 일이었고 관청에서도 별문제로 삼지 않았다.

이른바 일베 게시판에 '친구를 먹었다'는 글과 함께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을 든 사진을 올린 청년이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을 모욕한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그의 어머니는 유가족과 국민에게 공개 사과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 컴퓨터 앞에서 우쭐한 마음에 몇 번의 손가락을 놀린 대가는 너무 컸다. 스스로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까지 욕보인 패륜이 된 것이다.

도덕과 관습이 법보다 더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가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때때로 훨씬 효율적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분위기에 압도돼 감히 패륜적인 행동을 할 엄두도 못 내게 하기 때문이다. 효도는 못할 망정 부모까지 죄인으로 만드는 짓은 참 철없고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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