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떨어졌다/만유인력 때문이란다-때가 되었기 때문이지(이철수 판화집 중 '가을사과' 전문)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이라는 과학적 사고를 정리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만유인력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적절한 답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연과학적인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게 된 것이지요. 자연과학은 정확한 답을 요구합니다. 결국 자연과학적인 사고는 정답만을 요구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지금은 자연과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400점 만점 수험생에 대한 칭찬은 물론 그 학교에 대한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400점 만점을 맞춘 것처럼 그 수험생이 400점 만점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결국 인문학적 사고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만유인력 때문이 아니라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대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고요.
아침마다 쏟아지는 세상 소식에는 상처 입은 꽃잎들로 가득합니다. 상식적인 시선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절망이 개인을 파괴하고, 분노가 사회를 지배합니다. 많은 이가 현재를 비난하고, 미래를 부정합니다. 극단적인 이야기도 반복되면 무디어집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입니다. 인간에게는 인간만이 그릴 수 있는 무늬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생명과 관계된 일, 사랑과 관련된 일,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 먹고 입고 사는 일들이 훼손당하는 비극적인 일들이 최근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문학이 질문하는 영역은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잃어버린 인간의 무늬를 다시 찾아가는 일입니다.
한 소년이 소녀를 사랑했습니다. 그 소녀는 소년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모든 시간을 소녀에게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소녀에게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일종의 짝사랑이었던 셈이지요. 그리고 그 소녀는 결국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합니다. 비극적인 사랑의 끝을 맞이한 것입니다. 소년은 절망합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소년에게 흉터만 남겼습니다.
그런데 상처만 남은 듯한 소년의 삶은 진정 무의미한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자연과학적 사고는 그것을 비극으로만 해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사고는 다른 시선으로 흉터를 바라봅니다. 10년 동안의 사랑은 소년을 엄청나게 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별했다는 결론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고작 평생 중에서 10년이기도 하지만 그 10년이 어쩌면 소년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소년이 걸었던 삶의 길은 소년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글을 쓸 수도 있는 힘을 제공했을 수도 있고, 남들이 지니지 못한 감수성으로 인해 영화감독이나 예술가로 자라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삶은 20대가 끝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인문학은 바로 그렇게 삶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궁극적인 시간은 여전히 어디에선가 우리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그것이 인문학적 사고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해답보다는 질문을 중시합니다. 그러면서 현재를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합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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