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운전자의 급증과 교통유발시설의 증대로 대구 도심 도로는 동맥경화 현상을 빚고 있다. 대구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중교통 활성화를 통한 도심 내 차량 억제를 유도해 왔다. 버스전용차로, 대중교통전용지구, 공영주차장 요금정책 등은 시가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이다. 하지만 대구의 도로는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차량 지'정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크다. 대구시의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은 이대로 괜찮은가?
-(1)버스전용차로
(2)대중교통전용지구
(3)공영주차장
23일 오후 7시쯤 대구 중구청 앞 국채보상로. 이곳 왕복 6차로 도로는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도로가 막혀 서 있는 차들의 브레이크등 때문이었다. 승객을 태운 시내버스는 도로 가장자리의 버스전용차로(이하 전용차로) 위에 있었으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특정시간(오전 7~9시, 오후 5시 30분~7시 30분)에는 버스만 달리도록 도로 가장자리에 푸른색 차선을 그어놨지만 승용차, 화물차 등이 이미 차로를 꽉 메워 버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1991년 대구시가 시내버스의 원활한 소통을 돕고자 차들이 주로 몰리는 구간을 중심으로 설치한 전용차로가 시행 20여 년 뒤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도로 색칠에 그친 버스전용차로
지난달 12일 오후 5시 30분쯤 대구 도심을 동서로 가르는 달구벌대로의 전용차로 실태를 살피려고 대구 달서구 죽전네거리에서 수성구 만촌네거리까지 약 10.4㎞를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해봤다. 이 구간 전용차로가 설치된 곳은 죽전네거리부터 두류네거리까지, 또 수성교 동편부터 만촌네거리까지다.
먼저 죽전네거리에서 305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는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전용차로(5차로)를 달리다 달서구 감삼동 서남시장 건너편에서 가장자리 차로에 정차해 있던 택시들(4대) 때문에 차로를 변경했다가 다시 전용차로로 진입해 겨우 승강장에 멈췄다.
중구 반월당네거리에 내려 만촌네거리로 가는 609번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는 편도 5차로를 가득 메운 차들 때문에 한참이 지나고서야 수성교 너머 전용차로에 진입했다. 하지만 대구은행 본점 앞까지 전용차로를 가득 메운 차들 때문에 2~4차로를 오락가락하며 나아갔다.
전용구간에 들어선 버스의 주행 속력은 평균 시속 20~30㎞. 죽전네거리에서 만촌네거리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35분. 이 구간 중 전용차로가 설치되지 않은 구간(두류네거리~수성교 서편)과 중간에 잠시 환승을 하느라 소요한 시간을 빼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같은 구간을 승용차로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분, 도시철도로 이동할 때 22분밖에 걸리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버스는 그야말로 '거북이'인 셈.
시내버스를 타더라도 시간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던 전용차로의 도입 취지와 약속은 '거짓말'이 됐다.
◆구멍 숭숭 뚫린 단속 카메라
시내버스 기사들은 온갖 차들이 전용차로를 달리는 바람에 오히려 이 차로를 달리는 게 더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했다.
버스기사 정병화(54) 씨는 "단속 카메라가 있지만 이를 피해 가며 전용차로 위를 달리는 얌체 운전자가 많고, 단속 구간 한가운데 정차하는 일반 차량도 부지기수다"며 "예전에는 공무원과 사회복무요원이 현장 단속에 나서기도 했지만 요즘은 무인 카메라 단속만 하다 보니 버스전용차로 정착이 잘 안 된다"고 했다.
대구시는 전용차로 운용시간대 시내버스 외에 이 차로를 달리는 차들을 적발(차종별 과태료 4만~6만원)하고자 구간 구간에 단속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러나 대구의 전체 전용차로(117.2㎞)에 단속 카메라는 고작 20대. 단속 카메라로 단속 가능한 곳도 2.38㎞에 불과하다. 단속 카메라 한 대당 가시거리가 30m 정도임을 고려하면 단속 범위는 전체 전용차로의 0.5%(0.6㎞) 수준이다.
더욱이 시작 지점과 끝 지점 두 곳에서 위반 사실이 드러나야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으니 단속 구간은 이보다 훨씬 더 적다.
죽전네거리에서 만촌네거리로 향하는 달구벌대로에 설치된 전용차로엔 달서구 감삼동 서남시장 맞은편 약 205m 구간에 각각 1대씩밖에 없다. 버스를 탄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이곳 단속 카메라에 적발된 차량은 33대. 시작 지점에 87대, 끝 지점에 171대가 찍혔으나 과태료 부과 대상은 이들 차량의 12.8%밖에 되지 않았다.
◆개선에 손 놓은 대구시
전용차로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게끔 전문가와 연구기관들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개선책을 내놨지만 대구시는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대구경북연구원(이하 대경연구원)은 2003년 대구시 교통량을 분석해 전용차로 설치 기준(시간당 버스 30대, 승객 840명 이상)을 제안했으나 시간당 통행량 80대(출'퇴근 시간 기준)에만 맞춰 전용차로를 설치'운용하고 있다.
달구벌대로 두류네거리~수성교, 국채보상로 서성네거리~종각네거리 등 전용차로가 단절된 일부 구간에 전용차로를 추가 설치해 버스 운행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 역시 대구시는 도심을 관통하는 일반 차량이 많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3년 이후 대경연구원과 교통 분야 교수들은 ▷도시철도'순환도로 등과 중복되는 일부 구간의 전용차로 해제 ▷전용차로가 설치된 교차로에서 버스의 우회전 공간 확보 ▷이면도로에서 전용차로 진입 제한 ▷전용차로 안내 표지판 설치 ▷전용차로 무단 이용 및 불법 주정차 단속 확대 등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 개선된 게 없다.
시가 한 일은 2006년 이후 단속 카메라 12대 추가(8대→20대) 설치뿐이다.
대구시 교통과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전용차로 설치 장소와 단속 장소를 늘리는 데 중점을 뒀다. 여러 개선안 중 도입 당시 고려했던 것도 있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큰 틀의 변화를 주지 못했다"고 했다.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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