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1시 대구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 동물원.
점심을 마친 79종, 7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낮잠을 청해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동물원 좌우편에 있는 원숭이, 침팬지 방사장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 침팬지 방사장 안에 있던 루디(수컷'18)가 네 발로 방방 뛰어다니며 짜증을 냈다.
"여기에 온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아무리 살아도 적응이 안 돼. 배필이 생기고 더 넓은 동물원으로 옮기기까지 한다는 말만 듣고 여기까지 왔는데 딱딱한 바닥에 조금만 달리면 닿는 반대편 유리벽까지. 잔디가 깔린 흙바닥에서 놀던 용인이 그리워."
그러자 원숭이 장에 있던 망토개코원숭이(암컷'5)가 "여길 집처럼 드나드는 어르신들과 이제 좀 안면을 터 간식을 좀 받아먹을 수 있게 됐어. 다른 곳으로 옮기면 간식은 꿈도 못 꿔"라고 말하며 쇠창살에서 나무 위로 사뿐히 오르며 약을 올렸다.
잠시 후 동물원 가장 안쪽에서 시작된 울음소리가 동물원 안을 가득 메웠다. 침팬지와 원숭이의 말을 숨죽이며 듣던 남아메리카물개 대한(수'4), 민국(암'4), 삼식(암'4)이가 수조 바닥을 꼬리로 힘껏 밀쳐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말했다.
"루디(침팬지)는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동물원에서 나고 자랐지. 난 우루과이 앞 대서양 바다에서 동물원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왔어. 2년 전 침팬지와 함께 처음 달성공원으로 왔을 때만 해도 수성구와 달성군 모두 3곳에 대한 입지 분석을 끝냈다고 해 조금만 참으면 될 것 같았는데. 1천억원에 우리 모두를 데려갈 업자들이 어디서 나타나겠어"라며 눈물을 쏟았다.
건너편 물새 장의 청둥오리와 거위 80여 마리와 막 잠에서 깬 코요테도 감정이 북받쳐 우는 등 달성동 전체가 울음소리로 떠들썩해졌다.
물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달성공원 동물원의 최고 원로인 아시아코끼리 코순이(암'46)가 실외 방사장으로 쿵쿵거리며 나오는 발소리에 소란은 일순 잠잠해졌다.
"30년 전 머나먼 인도 땅에서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동물원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았어. 주말만 되면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과 놀아주느라 심심할 틈도 없었어. 근데 지금은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르신들까지 '관풍루 옆 200년 된 느티나무보다도 재미없다'는 소리를 우리에게 해 마음에 상처를 입곤 해. 대구시가 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 넓고 깨끗한 곳으로 이전하든지 아니면 동물사를 넓히고 흙과 잔디를 푹신하게 깔든지 결정을 내려 더이상 시민들이 우리를 애물단지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옛날처럼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동물원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야."
개나리 활짝 필 봄을 앞둔 달성공원. 하지만 동물 가족들에게 따뜻한 봄은 아득하게 느껴진다.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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