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론새평] 성전(性戰)으로서 성전(聖戰)

1963년 서울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 서울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이슬람국가(IS) 만행은 상상을 초월

성욕 근거한 잔혹성, 종말론과 연관

참수하면서 느끼는 감흥은 성적 표현

결국 종교의 외피 입은 사도마조히즘

칼로 인질의 목을 따고, 포로를 산 채로 불태우고, 게이를 건물에서 떨어뜨리고,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고, 유치원 소녀를 참수하고, 초등학생을 총살하는 등 그동안 이슬람국가(IS) 대원들이 저지른 만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근대 휴머니즘의 성취를 부정하고 시대를 고대와 중세로 되돌려 놓았다. 왜 그렇게들 잔인할까?

하나의 설명은,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어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 잔혹한 나치도 홀로코스트만은 되도록 감추려 했다. 그에 반해 IS 대원들은 자신들의 만행을 인터넷과 SNS를 통해 대대적으로 자랑한다. 따라서 그들의 잔혹함은 서구사회를 향해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테러'라는 말 자체가 원래 '공포'를 뜻하지 않던가.

하지만 IS의 잔혹성이 정말 그런 합리적(?) 계산에서 나왔을까? 물론 잔혹함으로 잠시 '공포'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잠시'가 지나면 상대의 가슴에는 '적개심'과 '복수심'만 타오를 뿐이다. 나아가 잔혹함은 그들이 표방하는 '대의' 자체를 훼손하여 친구마저 적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잔혹극은 전략적 행위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 생각에 그들의 잔혹성은 좀 다른 근원을 갖는다. 바로 성욕(sexuality)이다.

얼마 전 10여 명의 IS 대원들이 성노예 시장에 관해 잡담을 나누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한 녀석이 "오늘은 신이 베푸신 여자 노예를 팔아 한몫을 챙기는 날"이라고 킬킬댄다. 다른 녀석은 순교자가 되어 천국에서 수십 명의 처녀들을 받을 꿈에 부풀어 오른다. 듣자 하니 이런 자들을 위해 '성적 지하드'를 수행하러 서구에서 달려온 소녀들도 있단다.

IS의 성적 방탕은 종말론의 감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IS 대원들은 노예제 부활을 무함마드의 언행록에 예언된 "지구 멸망의 선구적 행위"로 본단다. 그들의 지하드는 현실에서는 어떤 희망도 없는 개인들이 느끼는 극단적 절망의 집단적 표현이다. 그 좌절을 심리적으로 보상받으려고, 그들은 자기들의 개인적 종말을 세계의 종말로 바꾸어 놓으려 한다. '종말아 오너라. 안 오면, 우리가 네게로 가겠다.'

종말론이 기승을 부리던 중세 말, 유럽인들은 임박한 종말을 두 가지 모순된 방식으로 맞았다. 어떤 이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영생을 위해 경건히 기도를 올렸고, 다른 이들은 죽어서 여한이 없도록 흥청망청 음주와 육욕을 즐겼다. 흥미롭게도 IS의 종말론에서는 이 두 태도가 하나로 결합된다. 그들은 한편으론 엄격한 종교적 금욕을 표방하며, 다른 한편으론 엄청난 성적 방종을 즐긴다.

종말은 신적인 상황이기에 그 속에서 인간이 만든 도덕과 법률은 효력을 잃는다. 인륜이 무효가 될 때 그들의 리비도에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이 열린다. 이 도덕적 규제의 진공 속에서 남세스런 사도마조히즘의 충동마저 종교적 시나리오로 성스럽게 각색된다.

하지만 IS 대원들이 '참수'를 하면서 남의 고통에서 느끼는 감흥이나, 활짝 웃는 표정으로 자폭하러 떠나며 느끼는 감흥은 분명히 성적인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1970년대에도 비슷한 시대착오적 잔혹극이 있었다.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을 하고 동료에게 제 목을 자르게 시켰다. 미시마의 잔혹극이 미학의 외피를 입고 있었다면, IS의 사도마조히즘은 종교의 외피를 입고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입은 옷은 달라도 본질은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IS의 가장 성스러운 전쟁은 동시에 가장 외설스러운 전쟁이다.

철학자 바타유는 에로스(성)와 타나토스(죽음) 사이의 은밀한 연결을 본다. 그에게 오르가슴은 "작은 죽음의 형태로 궁극적 죽음을 미리 맛보는 행위"를 의미한다. 바타유의 말이 맞는다면, IS의 대원들도 참수와 자폭을 하며 섹스로는 도달할 수 없었던 궁극의 오르가슴을 맛보는지도 모른다. 근데 언제까지 이 포르노를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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