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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마블링의 감동

최고의 소고기를 먹여준다는 친구를 따라 1등급 투 플러스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선홍색 고기를 구워 입에 넣는 순간 당황했다. 입에서 고기가 녹아버렸다. 훌륭했다. 그리고 나는 지방이 풍부한 이 고기와 이탈리아에서 먹어보았던 스테이크를 비교했다.

피렌체에는 세계 최고 비스테카 피오렌티나라는 피렌체식 티본스테이크가 있다. 안심과 등심이 중간에 뼈를 경계로 같이 있는 스테이크. 토스카나식 전통 방식으로 목초에서 자연 방사해 기른 끼아니나라는 소의 티본스테이크는 지방이 전혀 없지만 풍미와 부드러움의 극한을 맛보게 한다. 역시 입 안에서 녹는다. 마블링이 없는데 입에서 부드럽게 풍미를 느끼게 한다.

이탈리아 레드와인 중 사대천황이라는 끼안티 포도주 한 잔과 피오렌티나가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소고기의 건강한 품질 때문이라고 피렌체 사람들은 확신한다. 그리고 또 하나 세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소고기 스테이크는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평원에서 목초로 기른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이민을 많이 한 곳이 아르헨티나다. 그곳엔 목초 지역에서 자연 방목한 소고기로 만든 세계 최고의 스테이크가 있다. 마블링이 전혀 없는 선홍색의 빨간 육즙을 머금고 있는 세계 최고의 소고기다. 미디엄 레어의 안심이나 채끝 스테이크를 처음 먹는 분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처음 입 끝으로 느끼는 목초향과 어금니에 전해지는 묘한 질감이 환상적이다. 이탈리아산 최고 품질의 안심 100g이 10유로이지만 아르헨티나산은 5유로 정도 더 비싸다. 우리 입맛에 잘 맞지 않다는 마블링 없는 호주산 스테이크도 조금씩 마니아층을 넓혀가듯 조만간 우리 식탁에 자리 잡을 아르헨티나산 레드 와인과 고릿한 향의 안심 스테이크를 기대한다. 그때 오늘 먹은 1등급 투 플러스 한우와의 비교는 독자들에게 맡길 것이다. 왜? 음식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마블링이 예술인 고베 비프 즉, 와규라고 하는 흑소가 있다. 여름엔 지방 분포도를 위해 맥주로 죽을 쒀 공급하며 마사지로 근육을 풀어 육질을 부드럽게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방문 때 가장 먹고 싶어했던 그 스테이크가 바로 고베 비프다.

그런데 세계에서 마블링으로 고기의 등급을 나누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1920년대 초 미국 축산업 불황기 때 지방 밀도로 고기의 풍부한 맛을 낸다는, 악덕(?) 축산업자이며 언론인이었던 엘빈 센더슨의 감언이설에 미국 정부가 넘어갔고, 옥수수나 값싼 곡물을 먹인 소고기를 미국 소고기 품질의 기준으로 만들어버린 안타까운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맛보라. 그리고 느껴보라. 기름진 고기가 아닌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건강한 고기를.

김학진(푸드 칼럼니스트'까를로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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