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적 제거

1959년 7월 31일, 제헌의원이자 초대 농림부 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했던 죽산 조봉암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징역 5년의 1심 형량이 2심에서는 180도로 뒤집혀 사형으로 바뀌었고, 대법원의 재심 기각 결정이 내려진 하루만이었다. 이 사건은 50여 년이 지난 2011년 1월 20일 대법관의 전원 일치 찬성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에서 장준하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전 국회의원이자 잡지 사상계 사장으로 가장 강력한 유신체제 비판자였던 그의 죽음은 실족사로 발표됐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2002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했으나 공권력의 개입 여부는 '확인 불가' 결론을 내렸다.

이 두 사건은 우리나라의 절대 권력이 정적(政敵)을 죽음으로 몰고 간 대표적 사례이다. 죽음까지는 아니지만, 납치 사건도 있었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체제 반대 투쟁을 벌이던 김대중이 납치돼 5일 만에 풀려났다. 앞선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서 불과 94만여 표 차로 낙선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적이었다. 이 사건은 2007년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 보고에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정보부 요원들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부총리 출신으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절대 권력에 맞서 투쟁해 온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가 지난달 27일 괴한의 총격으로 암살당했다. 한 인터뷰에서 푸틴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며 어머니가 걱정한다고 밝힌 지 20일도 채 안 돼 정말 살해당한 것이다. 푸틴은 넴초프의 어머니에게 전보를 보내 "비열하고 냉소적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계획한 사람들은 반드시 법의 처벌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예에서 나타나듯 이런 사건은 실체가 잘 밝혀지지 않거나 흐지부지된다. 배후가 절대 권력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짐작되어서다. 이 때문에 하부조직의 맹목적인 충성심이 벌인 일로 밝혀지더라도 그 책임은 마땅히 절대 권력에 있다. 정적에 대한 극단적인 탄압은 대개 절대 권력 말기에 나타난다. 권력을 빼앗길지도 모르다는 불안감이 모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간 차는 있겠지만, 넴초프 암살은 푸틴의 몰락과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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