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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서민 역주행 대한민국] (7)서민 지망생들 '혹'

1등만 스포트라이트 받는 사회…'서민의 삶' 진입 조차 바늘구멍

요즘은 일반행정직 공무원뿐 아니라 경찰
요즘은 일반행정직 공무원뿐 아니라 경찰'소방'세무 등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이 평균 수백 대 일을 넘고 있다. 그만큼 낙오자도 많다는 방증이다.
고교 시절까지 잘 나가던 야구선수였으나 부상 때문에 좌절하고 술집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이 팁을 받고 있는 모습.
고교 시절까지 잘 나가던 야구선수였으나 부상 때문에 좌절하고 술집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이 팁을 받고 있는 모습.
명문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2군 선수들. 매일신문 DB
명문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2군 선수들. 매일신문 DB

'위너 테이크 올'(Winner take all). 현 대한민국 사회의 현주소를 가장 극명하게 말해주는 영어 한 문장이 아닐까. 승자독식 사회다. 가혹한 경쟁사회에서 1등, 챔피언, 총수, 대상, 최우수, 금메달, 퀸, 킹, 황제, 왕, 지존, 빅3, 빅5 등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자들에게 붙일 수 있는 단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승자(1등)가 부와 명예를 누리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빛나는 1등'으로 인해 드리워진 그늘을 생각해보자. 한 분야에서 100명이 경쟁한다고 가정하면, 나머지 99명은 뭔가. 톱 10은 그럭저럭 먹고살 형편은 되지만 90명은 속된 말로 '떨거지'가 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 것도 아니다. 어떤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경쟁의 출발지점도 달라진다. 100m 달리기는 하는데, 50m 앞에서 출발하는 소위 '엄친아'(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남부러울 것 없는 아이)를 어떻게 따라잡겠는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나고 마는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서민 지망생들을 들여다봤다.

◆사회 첫발부터 좌절을 맛보는 청년들

꿈꾸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꿈이 좌절되는 건 슬픈 일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탕발림의 위로일 뿐이다. 끝없는 경쟁사회에 내몰려, 본선에 오르지조차 못하고 꿈을 접어야 하는 청춘이 더 많기 때문이다.

#1. 올해 2월 영진전문대 항공서비스학과를 졸업한 한 취업준비생은 지난 2년 동안 하늘을 나는 직업을 꿈꾸다 결국 거제도 대우해양조선 의전 담당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지난해 국내 유명 항공사에 스튜어디스로 지원해 최종면접까지 가기도 했지만 졸업 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결국 진로를 바꿔야 했다.

#2. 지난해 2월 경북대 인문대학을 졸업한 한 고시준비생은 아직도 청년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첫 목표는 원대했다. 2학년 말부터 학교도서관에 틀어박혀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1차시험에만 두 번 고배를 마신 뒤, 목표를 낮췄다. 7급 공무원시험에 1년 동안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합격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위 두 사례는 단편적인 개개인의 사례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각종 시험준비생이 넘쳐나고 있다. 대구에만 해도 시내 중심가에 7'9급 공무원, 경찰공무원, 간호사 등 직업을 찾기 위해 준비하는 학원들로 넘쳐난다. 사실 사회적인 낭비다. 로스쿨'행정고시'외무고시'공인회계사'법무사'세무사'노무사 등 전문직을 향한 경쟁도 치열해 수많은 고시 낭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연예인'스포츠스타를 꿈꾸지만…

화려한 직업의 그늘은 짙다. TV를 켜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처럼 아름다운 여자나 헤라클레스나 다비드처럼 용맹하거나 조각처럼 잘 생긴 남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바로 모든 사람들의 선망이 되고 있는 톱스타다. 한번 뜨면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이들 소수의 스타 탄생을 위해 수많은 낙오자들이 쓰라린 좌절을 맛보고,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지 못하는 곳에서 인생 패배자가 되기도 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공개한 '2014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 는 지난해 7월 전국 초'중'고교생 18만여 명을 상대로 희망직업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초교 남학생은 스포츠스타를 1위로 꼽았고, 여학생은 초'중'고 모두 연예인을 미래의 선망직업 2위로 선택했다.

현실은 어떨까. 화려한 스포츠스타와 톱스타는 수천∼수만 명 중에 한두 명일 것이다. 지역의 한 대학교수는 축구 국가대표 주전으로 선발되는 것이 고시에 합격하는 것보다 더 경쟁률이 심하고, 힘든 관문이라는 얘기를 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대구경북에만 해도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한 운동선수들이 많았지만 박주영 축구선수와 같은 걸출한 스포츠스타는 몇몇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경쟁 오디션 열풍을 몰고 온 케이블 TV 프로그램 '슈퍼스타K'만 봐도 이런 현실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슈퍼스타K에서 우승하기까지는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최후의 1인 또는 2인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나머지 수많은 경쟁자들은 엑스트라일 뿐이다.

◆'주전은 대박, 후보는 쪽박' 인생도 극과 극

후보생이나 지망생은 어떤 분야든 극빈층이나 차상위계층 정도의 빈곤한 생활밖에 할 수가 없다. 문화예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톱스타급으로 성장한 배우 이성민 역시 대구 연극판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낸 대표적인 케이스다. 연극 포스터를 벽면에 붙이는 달인일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 2015년도 제2의 이성민을 꿈꾸며 수많은 연극배우와 지망생들이 지역 공연계에서 피땀을 흘리고 있지만 스타로 뜨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대구를 연고로 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 안에서도 연봉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지난해 최저연봉(2천400만원)을 받던 박해민 후보선수가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며 주전 자리를 꿰차, 올해 연봉이 3배로 뛰었다. 하지만 올해 다른 2'3군 선수들(올해 최저연봉 2천700만원)은 혹시나 기회가 올까 기다리고 있지만 수십 명 중 한두 명만이 제2의 박해민이 될 것이다. FA(자유계약선수)에서 올해 다시 삼성구단과 재계약한 윤성환(4년간 80억원), 안지만(4년간 65억원), 이승엽(1년간 9억원), 최형우(1년간 6억원) 등 주전 선수들의 연봉은 '억!' 소리가 장난으로 들릴 정도다.

스타와 후보생의 인생도 극과 극 인생체험이다. 후보생이나 지망생에서 탈락해, 인생 패배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운동선수들의 경우 채소장수, 유흥업소 책임자 및 종업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분야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들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사회불만 세력이 되기도 한다. 서민축에도 끼지 못하는 후보'지망생들의 인생을 지탱해 줄 제도적인 장치를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때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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