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백두산을 오른 적이 있다. 이름 모를 꽃들과 울창한 삼림, 그리고 장대한 폭포는 보기만 해도 감개무량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오르는 길목 저만치 바위 끝에 서 있던 외로운 상록수 한 그루의 모양새다. 온통 옹이투성이에 굵은 몸체는 강풍에 휘어져 한쪽으로 잔뜩 기울어져 있었다. 묵직한 가지들은 산봉우리를 향해 뻗어 있었지만 바람을 맞은 부분의 가지들은 다 부러지고 없었다. 겉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의 비밀이 있다면 그 나무의 내막에 있을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는 깊이 뻗어내려 꾸준히 양분과 수액을 공급하기에 철철이 나름대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다.
인생도 나무처럼 거센 풍파를 만나게 되어 있다. 폭풍이 불어올 때 우리는 부러지든지 아니면 더 강해지든지 둘 중 하나다. 차이가 있다면 폭풍의 강도가 아니라 우리 성품의 깊이에 있다. 결과는 우리 속 사람의 상태에 달려 있다. 고목처럼 혹독한 인생 사이클 속에서도 능히 우리를 지탱해주고 양분을 공급해줄 내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 장치가 바로 경건한 성품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비전과 열정이 있을 때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성품 때문에 리더십은 오래 유지될 수 없고 사람들도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품이야말로 우리의 참모습이다. 우리가 평생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지는 성품의 영향을 받는다. 남들이 알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인지도 성품으로 결정된다. 모든 인간관계는 성품 때문에 잘 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노력과 행운으로 얻은 재산을 얼마나 오래 지킬 수 있을지도 성품을 보아 가늠할 수 있다. 성품은 실패와 성공과 부당한 대우와 고통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결정짓는 내면의 각본이다. 성품은 우리 삶의 모든 면과 맞닿아 있다. 성품이 미치는 범위는 우리의 재능, 교육, 배경, 인맥보다 훨씬 더 넓다. 이런 것들로 문이 열릴 수는 있으나, 일단 그 문에 들어선 후에 어떻게 될지는 성품으로 결정된다. 외모와 재산으로 결혼은 성사될지 모르나, 결혼을 유지시키는 것은 성품이다. 하나님께 받은 생식기관으로 자녀는 낳을지 모르나, 자녀와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능력은 성품으로 결정된다.
현대 사회는 복잡한 기계부품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같다. 가정, 우정, 기업, 결혼의 형태로 서로 맞물려 사회를 돌아가게 한다. 삶의 윤활유인 성품이 없으면 마찰음이 너무 세고, 열이 나기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서로 갈라서고 마는 것이다. 찰떡궁합 같던 결혼생활에서 날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내고 있다. 동업자들이 사소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아울러 많은 부모와 자녀, 이웃과 친구들의 관계가 별것 아닌 문제로 완전히 깨어진다. 아예 갈등을 피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이들도 있다. 이 모두가 한 가지 성분이 빠졌기 때문인데, 바로 성품이다.
그럼 성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은 무엇인가? 가장 합리적인 척도를 들라면 관계의 건강성이 아닐까? 건강하고 오래된 관계는 온전한 성품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가장 근본적인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삶의 기반인 그분께 뿌리를 내릴 때 고산의 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자신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모든 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결정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더 건강한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이 부여받은 품성으로 깨어나는 계절에 모두가 성품의 사람으로 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주님, 성품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박창식 달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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