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아프리카 르완다의 전형적인 농촌인 기호궤 마을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마을 주민들은 쌀이 주식이지만 지금껏 벼농사를 지을 줄 몰랐다. 그런데 구릉지 아래 들판이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 마을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전수되면서 버려진 습지가 농경지로 바뀐 것이었다.
마을에 사는 카릭스트(28)라는 청년은 벼를 처음 재배한 새마을 시범농장에서 3만르완다프랑(한화 2만6천원 정도)을 벌었다. 평생 만져본 가장 큰돈이었다. 청년은 좋아하는 물건도 사야 했지만 글과 숫자를 몰랐다. 청년은 주민들과 함께 한국의 새마을 리더 봉사단으로부터 교육받으며 글과 숫자를 깨우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청년은 아침에 잠깐 밭일을 하고 나면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벼 낱알을 훔쳐가는 새떼를 쫓느라 논두렁을 지키는 게 일과가 됐다. 벼농사에다 각종 새마을 교육도 받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청년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첫 벼농사에 성공해 시범농장이 더 바빠졌다. 그날 주민들은 또 다른 농경지를 개간하고 있었다. 들판 한쪽에 새마을 깃발을 꽂고 주민 수백 명이 질퍽한 습지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새마을사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 우리의 농촌 모습 그대로였다.
새마을운동을 함께 시작한 인근 무심바 마을에서는 새마을 깃발을 도둑맞는 일도 있었다. 이웃마을 주민들이 밤에 깃발을 훔쳐와 자기 마을에 꽂아놓고 농경지 개간을 따라하는 것이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인근 4개 마을도 덩달아 벼농사를 짓게 됐다.
해외에서 새마을운동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일등공신은 경북이다. 경북도는 2005년 베트남을 시작으로 9개국 27개 마을에 '새마을'을 전수 중이다. 구미, 포항, 청도 역시 새마을 수출에 한창이다. 새마을 발상지 인프라 덕분이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 '새마을'은 철 지난 아이템이다. 개발독재시대 산물로 '개발'의 긍정 못지않게 '독재'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대사를 상징하는 콘텐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저개발국에서는 가난을 극복한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꼽고 있다.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새마을이 '세계화'로 진화하는 이유다.
이 '새마을'이 꼭 필요한 곳이 있다. 북한이다. 이와 관련 지난 12일 서울에서 눈길을 끄는 토론회가 있었다. 좌승희 영남대 석좌교수의 이른바 '대동강 기적론'이 그것이다. 요약하면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의 경험을 북한에 전수하면 북한의 경제적 삶의 질을 높여 통일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좌 교수가 보수 경제학자인데다 이날 토론회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로 열렸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북한의 지배층을 경제개혁을 이끄는 주체로 인정하고 추진해야 효과적"이라는 좌 교수의 주장은 충격이었다.
이날 토론회는 '통일 대박' 박근혜정부의 국정 최우선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대동강 기적론'이 힘을 얻는다면 이는 '북한판 새마을사업'이 될 것이다. 성공할 수 있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새마을 세계화에 누구도 딴죽을 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가 화두일 뿐 21세기 '새마을'은 이념(理念)과 진영(陣營) 싸움에서 자유로운 덕분이다. 유엔(UN)도 '새마을'을 세계 빈곤퇴치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보수세력이 '새마을'을 콘텐츠로 대동강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해진다. 북쪽이 변수지만 그 길을 여는 것은 정치다. 국제협력단(KOICA)과 경북이 손잡고 르완다에 새마을의 기적을 일군 것처럼 정치색을 배제하고 먼저 민간 차원에서 물꼬를 트는 것도 한 방법이다.
통일의 가치는 분단 비용을 줄이고 미래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데 있다. '르완다의 기적'이 북한에서도 가능하다면 이는 분명 통일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새마을'이 대박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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