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다 못해 서글픕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뭘 해야 할지 모른다면 해가 뜰 때 희망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할 일 없이 빈둥대는 똑같은 날이라면 누가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겠는가. 실업자들의 신세가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 실업자 중 3개월 차, 6개월 차는 명함도 못 내민다. 적어도 실업 3년 차 이상이 돼야 '실업자'라는 태그를 붙일 만하다. 3년 차 이상이 되면 무기력증, 대인기피증 등 여러 가지 신체 부작용까지 찾아온다. 매일 할 일이 없어 '엉! 엉!' 울고 싶은 대구경북 실업자들을 들여다보자.
#1. "나갈 곳이 없어요"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대졸 20대
"제발 집에서 나가라!" 3년 전 지역의 한 대학을 졸업한 김모(28'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씨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할 일이 없다. 컴퓨터 게임으로 온종일 집에 붙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안 분위기는 늘 싸늘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 있으려니, 속에 천불이 난다.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외국이라도 좋으니, 어디라도 일하러 나가라"고 큰소리 친다.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는 50대 후반의 아버지는 출근하면서 아들의 방을 보고 한숨만 길게 내쉴 뿐이다. 아직 부모 품을 떠나지 않은 이 '캥거루족' 아들 때문에 이 집안은 매일 분위기가 쑥대밭이다.
#2. 직업이 '아르바이트'…직장도 결혼도 포기한 40대
40대 초반의 장모(41'대구시 달서구 장기동) 씨는 직업이 아르바이트다. 사실 10년 이상 실업자와 아르바이트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젠 정규직 직장에 대한 희망마저 접었다. 주유소, 편의점, 치킨배달, 일용잡부 등 10여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종류별로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다. 번듯한 직장이 없다 보니, 소개팅이나 맞선을 봐도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이제는 직장뿐 아니라 결혼조차 포기하고 살고 있다. 7년 전 부모로부터 독립해 따로 살고 있지만 아직도 월세 40만원의 원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 대구 4.2%, 경북 5.0%
올해 2월 기준으로 통계청에서 잡은 대구의 실업률은 4.2%, 경북은 5.0%이다. 인원 수로는 대구가 5만4천 명, 경북이 7만1천 명이다. 하지만 이 통계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통계청에서 잡은 실업자의 기준이 1주일에 1시간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주일에 1시간만 편의점에서 일해도 엄밀한 의미에서 실업자가 아닌 것이다.
지역 실업률의 큰 문제는 최근 4년 동안 실업률이 계속 높아진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에 비해 올해 초에는 대구와 경북의 실업률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대구는 0.3%로 그리 차이가 많이 나지 않지만, 경북은 2.1%나 높아져 전국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보였다.
순수 실업자로 통계가 잡힌 이들은 사실상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이들이 대다수다. 이들 중 특히 청년실업자들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특별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함에도 국내 총자산 상위 30대 그룹은 지난해 채용 규모(12만9천989명)보다 6.3%나 줄인 12만1천801명을 새로 채용키로 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취업지원과 강기영 주무관은 "실업률은 외부 경기와 맞물려 있는 측면도 크고, 정부 정책으로도 실효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며 "오는 5월에 대규모 채용박람회를 계획하는 등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청년실업률 16개 시·도 중 최고
청년실업자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무능력자로 낙인찍히는데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로부터 들볶이기 때문에 연휴나 명절에도 편히 발 뻗고 잘 수가 없다.
지난해 말 고용률이 14년 만에 64%대를 넘어 65.3%를 기록했음에도 청년들에겐 '고용 절벽'이라 불릴 정도로 취업이 어렵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평균 청년(15~29세)실업률은 8.3%였다. 전체 청년실업자 수는 48만4천 명에 달했다.
대구경북 청년층 고용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4/4분기 대구 청년실업률은 10.3%로 16개 시'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평균에 비해 2%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고용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야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청년들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지나친 고학력화 등으로 고용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시장 2중 구조 심화도 청년실업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2중 구조화돼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의 37%에 불과하다.
실업자 관련 사설 연구기관 한 연구원은 "고용환경과 관련된 임금체계, 근로시간, 정년 등에 대한 대대적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며 " 노사 양측의 소모적 분쟁을 해소하고, 기업의 투자를 촉진해야 청년 구직이 더 늘어난다"고 조언했다.
◆구직 실패율이 전국 2위인 대구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대구의 실업 급여수급자 6만7천여 명 가운데 48.9%가 기간 내 구직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을 의미하는 구직 실패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광주(50.3%)였으며 이어 대구(48.9%), 대전(48.5%), 부산(47.6%) 순이었다. 실질적으로 대구에 거주하는 실업자 2명 중 1명은 실업급여 수급기간 내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실업률이 통계상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체감실업률도 등장했다. 지난해 대한민국 전체의 체감실업률은 12.5%에 달한다. 취업준비생이나 구직을 포기한 사람, 아르바이트 등을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통계청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청년층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70%가 대학에 가고 취업 준비기간도 길어지면서 실업률이 증가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 역시 노동시장 구조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고용노동부 차관이 주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청년실업률 대책을 올해 상반기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나 중소기업청 등 관련기관도 협력해 직접 청년 취업을 알선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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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일자리를 잃은 사람과 아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대한민국 통계청은 1주일에 1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을 실업자로 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실업자라고 할 때는, 안정적인 직업이 없는 모든 사람을 의미해 실질적으로 통계청 실업률은 국민이 느끼는 체감도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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