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브랜드, 뭐가 남았습니까?"
지역 브랜드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불과 5∼1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상호들이 이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나마 금융'건설'백화점'주류'언론 등 몇몇 업종은 지역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남아 있다.
동성로 '제일서적'은 '교보'영풍문고'에 밀려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만경관'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일극장'이 있던 자리는 대기업 'CGV'가 인수했다. 동성로 한복판을 걸어도 온통 전국 브랜드 대리점이나 프랜차이즈점들이 포진해, 지역 토종 브랜드를 찾기 어렵다.
개인 자본에 의존한 토종 브랜드들은 대기업의 대규모 물량공세와 경쟁력에 밀려 뒤안길로 저물고 있다.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특산물 브랜드들은 그나마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지역경제가 뿌리를 내리려면, 토종 브랜드들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역주행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다.
◆중앙로 '제일서적'이 있던 자리
대구를 대표하던 서점인 제일서적이 있던 자리에는 대기업 브랜드 또는 프랜차이즈 일색으로 변해 있다. 대중교통전용지구인 중앙로에 위치한 제일서적은 C&U 편의점으로 바뀌어 있다. 2층에는 프랜차이즈 동성로점인 '한스 델리'(Hans Deli)가 자리 잡고 있다. 왼편으로는 프랜차이즈 떡볶이점인 '아딸'이 있으며, 오른편으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인 '올리브 영'(Olive Young)과 음식점 프랜차이즈인 '본죽'(2층) 그리고 화장품 프랜차이즈 '미샤'(MISSHA)'에뛰드 하우스(ETUDE HOUSE)와 'T-World' 'U PLUS' 통신사 대리점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파출소 인근 대각선 방향도 마찬가지다. 토종 화장품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다국적 커피 프랜차이즈점 '스타벅스'(STARBUCKS)가 네온사인을 밝히고 있다. 바로 아래 본초당 한약방이 있던 건물 역시 안방을 내줬다. 1층에는 전국 인기 음식 브랜드인 '프리미엄 바푸리 숯불김밥'이 있으며, 수십 년 한약방을 해오던 본초당은 2층으로 올라갔다. 중앙파출소 반대편에도 토종 여행사인 '고나우 여행사'가 사라진 곳에 '실내야구장'이 들어와 있으며, 1층 역시 토종 문구사를 몰아내고, 대기업 편의점인 '세븐 일레븐'이 점령했다.
◆아파트 상가 7개 점포가 모두 외지 브랜드
중구 남산동 남산그린 아파트 상가. 달구벌대로 1층 대로변에 위치한 7개 점포가 모두 브랜드 업체들이다. 맨 왼쪽부터 'C&U 편의점-파리바게뜨-본죽-김파사(김밥을 파는 사람들)-배스킨라빈스-아리따움(ARITAUM)-정관장' 브랜드들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상가아파트는 하나의 샘플일 뿐이다. 대구지역 아파트 상가들의 대부분 점포들(50∼70%)이 브랜드 대리점 또는 프랜차이즈 지점이다. 대구뿐 아니라 수도권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번화가 또는 상가, 동네 곳곳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분식사업도 초토화되고 있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경우 동성로뿐 아니라 상가 곳곳에 파고들어 학생과 젊은 층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서문시장 제2지구 상인연합회 한 관계자는 "기업형 브랜드들이 규모를 확대하면서 소규모 점포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개인 사업자들이 서비스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더 힘겨워지는 대구 브랜드들
대기업 브랜드와 기업형 프랜차이즈에 밀려 지역의 서민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몇몇 대형 브랜드들만이 선전하거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지역경제 발전에 역주행하는 이런 추세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지역 자영업자들은 해가 거듭할수록 더 힘겹다. 2년 전 대구의 자영업자 수는 28만4천 명으로, 지역 전체 취업자(119만8천여 명)의 23.7%를 차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평균(22.6%)을 상회한 것이다. 하지만 성공사례보다는 실패사례가 더 많다. 특히 토종 브랜드로 성공한 자영업자는 가물에 콩 나듯 하다.
대구시 경제정책과 담당자는 "지역의 베이비붐 세대는 자영업을 선호하지만 경기변동 대응이 취약한 영세사업장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며 "생산보다 소비에 치우친 도시적 특성이 반영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경북지역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특산물 브랜드는 그나마 성공적이다. '청송사과' '성주참외' '고령딸기' '의성마늘소' '영양고추' '문경오미자' 등은 지자체에서 브랜드 슬로건을 개발하고, 홍보비를 들여 그나마 기업형 유통업체에 잘 대응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이철희 박사는 "지역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지자체가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 등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사진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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