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혼슈지방의 험준한 히다산맥 깊숙이 자리한 자그마한 전통마을 시라카와고(白川鄕). 갈대로 두툼하게 이엉을 엮어 경사가 급하게 지붕을 이은 독특한 형태의 일본 전형적인 초가 목조 고가옥이 이색적이다.
이 마을은 이미 20년 전인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하회마을보다 세계화가 15년이나 앞서 있다. 산악지역 혹한과 폭설을 극복하기 위해 지붕이 마치 손바닥을 마주한 형태를 띤다 해서 이 마을 목조 고가옥의 이름이 갓쇼즈쿠리(合掌造)다. 이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고가옥을 보존해 온 과정을 보면 우리 하회마을 세계화의 길이 보인다.
◆동화 같은 전통마을 시라카와고
겨우내 두터운 눈으로 덮여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후현 시라카와고 마을은 동화 속의 마을처럼 평온해 보인다. 갈대로 이엉을 엮어 가파른 경사의 갓쇼즈쿠리 고가옥 지붕에 하얗게 쌓인 눈은 마치 두터운 이불을 덮고 있는 듯 마을 전체가 편안히 잠자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 군웅할거 시대 전란을 피해 산골짜기로 들어온 사람들이 마을을 이뤘다는 시라카와고 마을은 총 면적 0.2㎢로, 7.2㎢인 안동 하회마을보다 작다. 일본 최악의 오지임에도 연평균 160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이 중 외국인이 20만 명이나 된다.
마을의 중심인 오기마치에는 보존되고 있는 갓쇼즈쿠리 전통 건축물이 모두 118동이나 된다. 양잠을 위해 지었던 갓쇼즈쿠리 가옥 본채와 화장실, 곳간, 건조막, 탈곡실 등 주된 갈대 초가 목조 고가옥 이외에도 돌담과 돌층계, 주목울타리, 노송도 모두 보호대상으로 정해두고 있다.
수려한 산세와 함께 잘 보존된 주변 환경이 고즈넉한 갓쇼즈쿠리 고가옥과 한데 어우러져, 마을 정경 자체가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더없이 좋은 관광자원이다. 이 작은 마을이 관광객들을 연중 끊임없이 유인해 내는 이유를 알 만하다.
겨울철은 관광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은 밤새 스포트라이트를 켜서 겨울밤 눈 내리는 마을 정경을 연출해 보여 주는 정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폭설로부터 갓쇼즈쿠리 목조 고가옥을 지켜 내느라 6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은 겨우내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쌓인 눈은 고가옥을 무너뜨릴 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어두운 밤에도 개미떼처럼 지붕에 올라가 눈 치우기 중노동에 나선다. 급경사로 만든 지붕임에도 며칠 사이 수m씩 내리는 눈이 갈대 이엉에 얼어붙어 겹겹이 쌓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노력은 백조가 호수에 평온히 떠다니고 있는 이유를 떠올리게 한다.
약 40여 년 전 심각한 이농현상으로 마을 주민들이 떠나게 되자 1971년 오기마치 마을 전 가구가 참여해 '시라카와고 자연환경지키기협회'를 설립했다. 빈집들이 늘어나고 위기의식이 팽배해지면서 남은 주민들 사이에 서로 협력해 마을을 지켜내자는 정서가 생겨난 것.
주민들은 갓쇼즈쿠리 가옥 구조 변경의 심사와 보존, 보존 방식의 연구, 보존 사업의 실천, 주민의 불편 해소 및 조정 등에 나섰다. 일본 정부가 문화재 관리를 하기 이전의 일이다. 덕분에 330여㎡(100여 평)이 넘는 거대한 목조 초가를 온전하게 보존해 온 시라카와고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오늘에 이른다.
안동시 김재교 문화예술과장은 "하회마을은 마을 외부 문화재 전문가들이 보존 가치를 재기해 보존 대책이 수립된 데 비해 일본 시라카와고 마을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먼저 보존 대책에 나섰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지방 조세권도 부여된 관리사무소
"시라카와고 마을을 유지하는 데는 거주민들의 손이 필수입니다. 따라서 불편함으로 인해 마을을 떠나지 않도록 쾌적한 주거 환경과 삶의 질을 높여 주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을 관리를 맡고 있는 시라카와무라(白川村)사무소의 문화재계장인 게이타 마츠모토(42) 씨는 시라카와고 마을 전체 주민 수는 1천700명이고, 중심지인 오기마치에도 132가구 6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1950년대까지 양잠이 주민 수입원이었다. 그래서 갓쇼즈쿠리 가옥 2, 3층은 누에치기와 명주실 뽑기 등 양잠에 이용됐다. 지금은 가옥 내에 양잠도구만 전시돼 있다.
시라카와무라사무소는 하회마을과 같은 기능이지만 규모는 엄청나다. 전체 직원 수가 60명이나 된다. 행정요원이 40명이고 보건담당과 소방담당이 20명이다. 시라카와고 마을은 우리의 도(道) 단위 행정기관인 기후현의 직속이지만 일반 시군과 같은 수준의 자치권도 갖고 있다. 관리사무소 소장은 자치단체장과 같은 급으로 지방 조세권도 행사하며, 예산 편성권과 함께 댐을 축조해 전기 판매 대금도 획득, 마을 재정자립도를 높여 가고 있을 정도다.
시라카와무라사무소 산하에 문화재 보수관리와 주민교육을 맡는 교육위원회가 있고 기금 3억엔(한화 30억원) 규모의 마을 재단도 설립돼 있다. 같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회마을은 청원경찰을 포함해 고작 10명뿐이다.
"원래 시라카와고는 오노군(郡)에 속해 있었는데 10여 년 전에 시군 통합 과정에서 분리돼 시라카와고 마을만 따로 남아 기후현 산하 특별 자치단체가 됐습니다." 마츠모토 씨는 세계유산 마을은 물론이고 인근 전통마을 배후 지원 지역도 편입시켜 함께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마을관리사무소 성격이라기보다 시라카와무라 지방정부이다. 전통 고가옥 유지보수는 소유자가 10%를 부담하고 90%는 국비와 도비를 65대 35로 배정받아 부담한다. 주민소득원은 관광업이 90%다. 기념품, 특산물 판매와 음식점 운영, 숙박업, 고가옥 유료관람 등이고 겸업으로 자가소비용 농업을 한다. 주차장 수입만 연간 1억엔(10억원)이다.
"일본은 문화재 관리 국가사무를 이미 40년 전에 지방정부로 이전했습니다. 중앙정부는 매년 관리예산만 이관하고 문화재엔 손을 뗐지요." 하회마을과 시라카와고를 비교 연구하고 있는 일본 교토대 대학원생 박연(37) 씨는 "이제 우리나라도 문화재가 있는 그 지역의 사회환경과 주민정서를 고려해 현실에 맞는 문화재 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보존을 위한 규제보다는 주민 삶을 위한 문화재 관리의 자율이 더욱 필요하다는 말이다.
◆주민 자율에 맡긴 문화유산 관리
"마을 주변에 흐르는 하천의 물 빛깔이 뿌연 흰빛을 띠고 있어서 백천(白川)이라고 부르지요. 하천 이름에 향(鄕)자를 붙여 마을 이름이 시라카와고(白川鄕) 라고 지어졌습니다." 마을 보존회장인 와다 마사히토 (62) 씨는 '어서 오세요'라며 우리말로 인사를 한 후 마을 내력을 설명했다. 시라카와고라는 마을명은 낙동강 본류가 태극형으로 돌아 흐른다 해서 하회(河回)마을이라고 지어진 것과 같다. 마을을 끼고 흐르는 하천과 산, 농지와 고가옥이 한데 어우러진 형세도 하회마을과 흡사하다. 특히 시라카와고는 세계유산이 된 이후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현재 마을 내 초등학생이 100여 명에 이른다. 하회마을도 한때 인구 1천여 명을 기록하며 초등학교가 운영될 정도였으나 이농으로 급속 쇠락, 이제는 126가구에 240명만이 살고 있다.
"갓쇼즈쿠리 고가옥의 외형과 건축물 구조만 손상시키지 않으면 내부 구조변경에 대해서는 일절 간섭하지 않습니다." 갓쇼즈쿠리 일본 전통가옥도 우리처럼 본채와 별도로 화장실이 마당 건너편에 따로 자리 잡고 있다.
'언제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가게 됐느냐'는 질문에 마츠모토 계장은 '50년 전'이라고 한다. 이는 문화재 관리 차원이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수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내화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삶 위주 문화재 관리는 일본도 중국 윈난성 리쟝고성 사례와 마찬가지다. 반면 우리는 문화재 목조건물 실내에 화장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본보다 50년이나 늦었다. 문화재 당국은 겨우 지난 1월 문화재 건축물 실내 구조변경에 대한 규제를 풀었다.
"갓쇼즈쿠리 가옥의 개방과 함께 입장료를 받고 안 받고는 주민 자율입니다. 대신 들어가고 말고는 순전히 관광객의 몫이지요."
와다 씨는 관광객들에게 갓쇼즈쿠리 고가옥 개방에 대한 권한은 전적으로 마을주민들에게 있다고 했다. 우리처럼 관람료 징수 여부 등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이 일절 관여하지 않고 주민 자율에 맡긴다는 이야기다. 대학에서 근무했던 그는 정년퇴직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라카와고 마을에서도 대도시만큼 수입이 된다고 한다.
세계유산이 된 지 올해로 20년인 시라카와고 마을은 이제 관광 개발보다 마을 보존에 치중한다. 주민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돼 더 이상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동안 일본은 시라카와고 마을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고산준령을 온통 터널로 뚫어 외부와 도로를 이어 놨다. 마을 주변도 가파른 산지를 절개하는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 터널로 거미줄처럼 통로를 만들었다. 도로보다 터널이 더 많을 정도다.
"갓쇼즈쿠리 초가 목조 빈집만 잘 보존하고 있다면 누가 시라카와고 마을을 찾겠습니까." 마사히토 씨의 이야기는 아무리 뛰어난 문화유산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살아야 그 가치가 있고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면 저절로 전통문화에 대한 보존의식도 높아진다는 의미였다.
"박물관에 문화재만 보존하고 있다면 수장고이지 박물관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와다 씨의 말에서 일본도 중국도, 자국 문화 세계화를 위해 규제를 버리고 주민 자율이라는 가장 손쉬운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도청전략기획팀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심용훈 객원기자 goodi6864@naver.com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