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싱가포르 성공의 비결

자율 도덕'상호신뢰'무한책임 바탕

국가를 가족처럼 운영한 정치고수

다양한 이질성을 싱가포르로 묶은

리콴유의 정치 비법'지혜가 부럽다

싱가포르의 거목 리콴유가 세상을 떠났다. 중국계 화교였던 그는 영국이 차지하려던 말레이시아의 섬을 떼어내어 싱가포르로 독립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지금 세계 최고의 강소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혹자는 그가 설계한 엄격한 도덕국가모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만 사족에 불과하다. 동남아의 초라한 어촌을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국가로 탈바꿈시킨 공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의 업적이다.

싱가포르가 잘 사는 비결의 하나는 지정학적 조건이다. 우선 위치가 좋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끝자락, 말라카해협의 입구, 인도양과 태평양의 길목,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접점이자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 전쟁의 시대, 단절의 시대에는 가장 취약한 위험지역이었지만 시장중심의 교류시대가 열리면서 최고의 요지가 되었다. 전략 환경도 좋아졌다. 중국과 인도가 부상하면서 동남아지역도 지역경제발전권역에 편입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아시아 복귀도 동남아의 경기활성화를 부추겼다. 동남아지역 내부국가들도 변화에 편승하고 수용했다. 미얀마를 비롯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이 개방개혁을 가속화했다. 싱가포르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싱가포르의 경험과 자본, 기술을 동남아 국가들에게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 과정을 공유했다. 영국계, 중국계, 인도계, 말레이계로 구성된 싱가포르의 다양성을 활용하여 동남아 국가들을 아세안(ASEAN)으로 묶고는 언제든지 영양분을 취할 수 있는 숙주로 만들었다.

싱가포르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은 국민들의 부지런함이다. 일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조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은 일찌감치 시작된다. 학생들은 오전 6시나 6시 30분까지 등교한다. 일간지에 게재된 스승의 날 모습이다. "학원을 포함해서 18명의 선생님에게 직접 만든 음식을 선물했다." 사교육이 극성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학교성적이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이러한 상존하는 위기감이 싱가포르인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이러한 싱가포르 성공의 배경에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다. 리콴유의 싱가포르가 아들 대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싱가포르인은 정부의 도덕성을 믿는다. 때로는 엄격한 법규와 가혹한 법집행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국민들은 정부를 지지하고 신뢰한다. 그것은 정부의 행위가 국민을 위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안정되고 일관적인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정책적 지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싱가포르인들이 믿는 정부는 국민에 대한 무한책임을 가지고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인프라를 보면 내막을 잘 알 수 있다.

싱가포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복지, 환경 인프라가 월등하게 좋다. 주거지역마다 값싸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호커센터가 배치되어 있다. 주택보급률도 상당히 높다. 싱가포르 국민이면 누구나 주택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에서 국민주택(HDB: New Housing and Development Board)을 지어 보급하고 수리 및 시설개선에도 정부가 보조하고 있다. 소위 정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한다. 일자리 배치도 섬세하다. 남녀노소 직분과 나이에 맞게 적절하게 일자리를 안배한다. 마을 호커센터에서 잔반을 정리하고 그릇을 치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느리지만 안정되고 편안하다. 공공도서관의 관리인 할아버지는 잠자는 사람들을 일일이 깨우며 다닌다. 도서관은 잠자는 곳이 아니라며 훈계하는 모습이 정겹다.

이것이 리콴유가 설계한 싱가포르이다. 자율적인 도덕과 상호신뢰 그리고 무한책임을 바탕으로 국가를 가족처럼 운영한 정치고수, 리콴유의 비법이 부럽다. 너무나 다양한 이질성을 싱가포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은 최고의 정치기술자 리콴유의 지혜가 부럽다.

이정태(경북대교수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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