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도청 시대 하회마을] (14) 세계적인 걸작 예술품 국보 하회탈

"웃음기 머금은 하회탈 이면엔 800년 전 공연예술 숨어있죠"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원들이 탈춤공연을 끝낸 뒤 탈을 벗어들고 하회탈 세계화를 위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오중(이매), 손상락(부네), 권순찬(선비), 임재선(초랭이), 김춘택(할미), 신준하(중), 이상호(백정), 최영호(양반), 손영애(각시).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원들이 탈춤공연을 끝낸 뒤 탈을 벗어들고 하회탈 세계화를 위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오중(이매), 손상락(부네), 권순찬(선비), 임재선(초랭이), 김춘택(할미), 신준하(중), 이상호(백정), 최영호(양반), 손영애(각시).
하회탈의 눈과 코, 입은 실제 사람의 얼굴보다 크게 과장시켜 놨다. 이 때문에 영상기술자들의 클로즈업 효과처럼 관객들이 멀리서도 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800년 전 탈 제작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천재였을 것라고 한다. 사진은 김동표 하회동탈박물관장이 공방에서 양반탈을 깎고 있다.
하회탈의 눈과 코, 입은 실제 사람의 얼굴보다 크게 과장시켜 놨다. 이 때문에 영상기술자들의 클로즈업 효과처럼 관객들이 멀리서도 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800년 전 탈 제작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천재였을 것라고 한다. 사진은 김동표 하회동탈박물관장이 공방에서 양반탈을 깎고 있다.

국보 제121호 하회탈은 이미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세계적인 걸작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지도 30년이 지났다. 최근 들어 하회탈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 아이콘(Icon'신호)이자, 개성 넘치는 한국인의 캐릭터(Character'이미지)로도 인식되고 있다. 세계유산이 된 안동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로고(Logo'상표)이기도 한 하회탈은 이제 말 잔치로 만족할때는 지났다. 문화융성 시대에 있어서 하회탈만큼 뛰어난 우리 문화 세계화의 소재(素材)도 없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웃음의 극치 양반탈

설레는 마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했다. 국보 하회탈 진품을 보기 위해서다. 지난 30년 동안 부네탈을 쓰고 하회별신굿탈놀이를 해 온 손상락(56) 학예사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부네탈 진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1층의 긴 통로를 지나 수장고로 향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하회탈을 다루는 박물관 학예사가 양반탈과 선비탈, 부네탈, 이매탈을 차례로 꺼낸다. 그리고 각시탈, 할미탈, 초랭이탈, 중탈, 백정탈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아홉 개의 탈이 누워서 쳐다보며 웃고 있다. 박물관 측은 만지지는 말고 그냥 들여다보기만 하란다.

"하회탈 하면 떠올릴 정도로 부드러운 웃음의 대표적인 탈이 바로 양반탈입니다. 보세요.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지요."

손상락 학예사는 사람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인의 천재성은 세계 어느 탈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감탄을 거듭한다. 탈 제작자는 미간에서부터 눈꼬리에 이르기까지 눈과 눈썹, 눈두덩이를 시원스럽게 깎아냈다. 두툼한 눈꺼풀은 후덕함이 스며 있고 웃음으로 벌어진 입에 밀려 위로 당겨진 양볼은 거침없는 파안대소를 그대로 나타낸다.

사진작가 강병두(50) 씨도 촬영을 멈추고 한동안 탈을 멍하니 들여다보고만 있다. "어떻게 나무 덩이로 이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다듬어 낼 수 있을까."

그도 "양반탈은 눈꼬리뿐만 아니라 뺨과 코, 콧구멍, 입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얼굴 곡선이 한데 어우러져 전체에서 부드러움이 풍겨난다"며 연신 감탄사를 토해 낸다. 사람의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가운데 기쁠 희(喜)를 가면에다 이렇게 완벽할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예사로운 조각가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하회탈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탈놀이와 함께 별신굿을 전승하던 하회마을도, 하회마을 사람들도 오롯이 남아 있기에 하회탈의 문화적 가치가 세계적이라는 것이지요." 진품 탈에 취해 있던 손상락 학예사는 우리나라 국보 가운데 이처럼 살아 생동하는 문화재는 하회탈이 유일하다고 거듭 자랑한다.

◆인간 희로애락을 담아 낸 하회탈

선비탈은 눈썹을 이마 중간까지 추어올리고 눈을 부릅뜬 표정이다. 양반탈과는 달리 화가 났거나 흥분된 모습이다. 언뜻 보기에도 느낌이 희로애락 중 성낼 노(怒)를 표현하고 있다. 양 눈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있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것은 성질이 급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약방의 감초영감처럼 매사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 사사건건 동네 일에 참견하는 성미는 마을 사람들의 놀림감이다.

"선비탈에서는 모든 얼굴 근육이 팽팽해진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한껏 부풀려진 콧구멍에다 광택이 일 듯 튀어나온 광대뼈, 검붉은 얼굴색은 탈의 성격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지요." 손상락 학예사는 아홉 개의 하회탈 중에서 선비탈이 가장 역동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양반탈의 너그러운 웃음과는 달리 얼굴 전체에서 선비탈은 심술이 뚝뚝 떨어진다.

웃음의 미학은 양반탈이 대표적이지만 부네탈의 미소도 만만찮다. "부네의 웃음은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이듯 하는 은밀한 웃음소리지요."

30년째 부네역을 맡고 있는 손상락 학예사는 진품 부네탈에서 '호호호'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면서 웃는다. 부네탈의 고혹적인 미소는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행복에 겨운 스마일 표정이다. 당겨진 뺨과 실눈의 미소와 함께 입맞춤 때나 나타나는 입가의 미세한 긴장도 고스란히 묘사해 놨다. 그러니 부네탈은 희로애락애오욕 중 사랑 애(愛)의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동대 윤천근 교수는 "부네탈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시골풍의 순박한 여인네가 아니라 도회풍의 요염성을 갖고 있다"며 "얼굴 전체의 분위기도 상당히 미려하면서도 육감적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항상 웃고만 있는 바보 이매탈은 800년 전 탈 제작자 허 도령이 자신의 존재를 이 탈에 담아 전설로 전하고 있는 탈이다. 전설에 의하면 제작자인 허 도령이 마지막으로 이 탈을 깎다가 이웃처녀가 탈막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산신령을 노하게 하면서 탈 이나 급사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미처 턱을 깎지 못한 미완성의 탈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미완의 이매탈은 하회탈에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어 왔다. 턱이 없는 까닭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설명해야 했기에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스토리텔링으로 800년이나 이어져 올 수 있었다. '바보 같은 소리'라는 뜻의 '턱도 없는 소리'도 바로 이매탈이 어원이다.

미완의 이매탈은 사람이 탈을 쓰면서 완성된다. 사람의 턱이 탈의 턱을 대신해 더욱 완벽한 웃음을 자아낸다. 탈 제작자의 천재성이 또 한 번 나타나는 부분이다. 천진무구한 이매의 웃음을 보면 영락없는 낙(樂)의 극치다.

평생 하회탈만 조각해 온 김동표(62) 하회동탈박물관장은 양반탈, 선비탈, 부네탈, 이매탈을 이렇게 자랑한다. "수백 가지 세계탈을 수집해 봤지만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가면은 우리나라 하회탈 이외에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

양반탈과 부네탈, 이매탈도 그렇지만 소를 단숨에 때려잡는 우악스런 백정탈에도 득의만만한 웃음이 그려져 있다. 부네를 업고 달아나는 타락한 파계승의 표정도 양반탈과 같은 흐름의 웃음이다. 자세히 보면 고된 살림살이에 찌든 할미탈의 심술궂은 얼굴에서도, 비뚤어진 입으로 익살을 자아내는 초랭이탈의 표정에도 입가에는 웃음이 묻어 있다.

한껏 화가 나 억지를 부리는 선비탈도 실상 억지 뒤에 입을 가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을 뿐이다. 이는 오히려 해학과 풍자, 익살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연희판을 폭발적인 웃음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웃음끼 넘치는 하회탈이 있었기에 그 옛날 서민들이 지배계층인 양반 선비들을 탈(트집) 잡아도 탈(말썽) 나지 않는 절묘한 탈 연희판을 기가 막히게 연출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동표 관장은 탈 제작자인 허 도령은 분명히 이를 의식하면서 탈을 깎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을 문젯거리를 덮어두지 말고 드러내 문제를 삼는 현실 비판적인 풍자극을 위한 탈 표정 구상에 세심한 배려가 숨어 있다는 것. 그는 "아마 하회탈 제작자의 의도는 바로 마을 구성원들이 모두 웃으며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그린 것이 아니겠느냐"고 풀이한다.

"하회탈은 가면극 공연 전용 탈로 만들어졌습니다. 코와 눈을 실제보다 크게 과장시켜 깎은 것은 관객들이 멀리서 봐도 탈의 표정과 공연내용을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손상락 학예사의 설명은 놀라움 바로 그것이다. 마치 현대 영상기술자들이 화면을 크게 확대해 관람객들에게 연기자의 표정을 자세하게 보여 주는 클로즈업 효과를 탈 제작자가 이미 800년 전에 하회탈에다 연출해 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하회탈 제작자는 한국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천재임이 틀림없다.

그 옛날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열릴 때마다 안동과 예천 등 태극지세 일원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하회마을로 몰려들었다. '하회별신굿을 못 보면 죽어서도 천당에 가지 못한다'는 소문에 사방 100여 리(40㎞)의 사람들이 다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탈 제작자는 연희판을 멀리서 뒤꿈치를 들고 봐야 하는 관객들까지 배려해 탈을 깎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보니 주먹만 하게 과장시킨 코와 시원하게 뚫린 콧구멍, 한껏 웃음으로 형상화한 눈매, 그리고 따로 만든 턱에서 천재가 아니면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공연예술 기능성이 그제야 눈에 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과 유려한 예술성이 더해진 하회탈이야말로 앞으로 웅도경북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은 물론이고 우리 문화 세계화의 견인차가 되고도 남음 직하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표정이 바뀌는 하회탈, 사회적으로 처한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사람들의 두 가지 표정을 절묘하게 하나의 가면에 담아 낸 하회탈은 피카소의 작품과 비교할 정도로 세계적인 걸작 조각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회탈의 우수성을 이구동성으로 자랑하던 김동표 관장과 손상락 학예사는 "지금은 국보 하회탈의 진품 가치와 느낌을 지구촌 세계인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준비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절박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세계적인 걸작품인 하회탈이 중국과 베트남에서 싸구려 관광기념품으로 마구 제작돼 국내 전체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도청권전략기획팀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심용훈 객원기자 goodi6864@naver.com

사진작가 강병두 pimnb12@hanmail.net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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