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살짝 스쳤는데 데굴데굴? 엄살 오해받다 우울증까지

이상곤 대구파티마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통증클리닉 과장이 진료를 하고 있다.
이상곤 대구파티마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통증클리닉 과장이 진료를 하고 있다.

직장인 이성진(가명'26) 씨는 사고를 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늦은 퇴근길, 차를 몰고 가던 이 씨는 아차 하는 순간, 신호대기 중이던 차를 들이받았다. 사고 충격으로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부러진 팔은 아물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제대로 손을 오므리지 못했고, 화끈거리는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고, 매일 뜬눈으로 지새울 정도로 통증에 시달렸다. 이 씨는 교통사고 여파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씨는 신경차단술로 통증을 가라앉히고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은 뒤에야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아프다"는 이들이 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들이다. 건들기만 해도 특정 부위가 화끈거리고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수시로 찾아온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 탓에 일상생활도 큰 지장을 받는다. 심한 경우 불면증이나 우울증, 분노, 불안 등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X-선이나 MRI 등 영상 촬영으로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고, 몸에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엄살'이라는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다.

◆외상이나 수술이 가장 흔한 원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외상 후에 특정 부위에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신경병성 통증을 말한다. 감각신경과 운동신경, 자율신경에서 복합적으로 이상이 생기는 증상으로 미미한 자극에도 과도하게 통증을 느끼거나 자극이 없어도 갑자기 통증을 느낀다. 근육이 쪼그라들거나 손이나 발이 오그라드는 운동신경 이상이나 땀이 마구 났다가 멈추는 등 자율신경 이상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외상을 입거나 수술을 한 부위를 중심으로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쪽에서 통증이 나타난다. 찌릿한 느낌이 들고 마치 다른 사람의 신체인 것처럼 괴리감이 들거나 정서적으로 예민해지고 우울감이 드는 증상도 나타난다. 극심한 통증 외에도 불면증, 우울증, 불안, 분노 등 심리학적 문제까지 동반되는 것이 특징이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주로 40대 초반에서 많이 나타나며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2, 3배가량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인도 다양하다. 주로 외상이나 수술이 원인이지만 주사나 가벼운 상처 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간호사 박모(26) 씨가 그런 경우다. 박 씨는 의약품의 뚜껑을 열다가 손가락 끝을 살짝 베였다. 상처는 이내 아물었지만 손가락부터 시작된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통증은 손 전체로 번졌고, 손이 붓고 화끈거리는 증상이 계속됐다. 손가락 끝을 베이면서 말초 신경에 손상을 입은 탓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박 씨는 2주 넘게 통증으로 괴로워하다가 신경차단술을 받고서야 진정됐다.

환자들은 다양한 증상들을 호소한다. 같은 증상이 있더라도 그 정도는 환자마다 다르다. 환자 대부분 팔과 다리에 화끈거리는 통증을 호소한다. 혈관 이상으로 피부색이 얼룩이나 자주색 또는 밝은 붉은색으로 변하거나 창백하게 바뀌기도 한다. 피부 온도도 차이가 생긴다. 통증이 생긴 부위는 다른 부위에 비해 체온이 1도 이상 차거나 뜨거울 수 있다. 근력이 약화되거나 운동범위가 줄고, 근육 긴장 등 운동기능 장애가 나타나고, 지각 과민이나 땀 분비의 변화, 감각저하, 떨림 등의 증상도 보인다.

◆엄살로 오해받는 경우 많아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아직 진단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다양한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X-선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자율신경검사, 근전도 검사 등 특정 검사로 진단을 내리기 어렵다. 따라서 ▷감각이상 ▷혈관운동이상 ▷발한이상'부종 ▷운동이상'이영양성변화 등 4가지 범주 가운데 3개 이상 범주에서 1개 이상의 '증상'이 나타나거나 2개 이상 범주에서 1개 이상의 '징후'가 있을 경우 복합부위통증증후군으로 진단을 내린다. 증상은 환자 본인의 주관적인 상태를 말하고, 징후는 의사가 객관적으로 보거나 진찰했을 때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원인이 다양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명확한 치료법이 확립돼 있지 않다. 치료의 핵심은 만성 통증을 줄이고 빨리 기능적인 원상회복을 하는 데 집중된다. 이를 위해 약물치료와 중재적 통증치료, 심리학적 치료, 물리 치료 등이 필수적이다. 환자들은 경피적 신경자극법이나 경막신경차단. 정맥부위마취법, 정맥주사요법, 교감신경절제술, 척추신경자극기 삽입술 등 다양한 신경차단술을 통해 우선 통증을 줄이고, 물리치료 등으로 기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또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확인하고 치료해야 한다.

이상곤 대구파티마병원 통증클리닉 과장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진단이 쉽지 않기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경 손상이 진행되면 치료가 굉장히 힘들어진다"면서 "노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이상곤 대구파티마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통증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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