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 육사병동실의 아버지

허이주(대구 달서구 성지로)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창문이 밝아올 때

온 세상이 정지된 듯 숨을 쉬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푸- 하고 숨을 몰아쉬기를 반복한다.

옆에 있는 아들은 가슴이 뜨끔하다가 이내 무심한 얼굴로 돌아간다.

한밤중엔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를 갈망한다.

나가려는 아버지와 붙들려는 아들의 실랑이가 밤새 계속된다.

한눈을 팔 땐 맨발로 나가다 넘어지기도 한다.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 통을 겪으며

혁명의 한중간에서 치열한 20대를 보내고

굶주림 무서움을 넘어 처절한 30대를 살았으며

밤낮없이 앞만 보고 달린 40대를 지나

초연하게 세상 바라보며 50고개를 넘어갈 때

어느덧 삶의 주인공에서

한편으로 물러서있는 자신을 보며 늙어버린 아버지

"내가 젊었을 땐 말술을 마시고 소도 잡을 수 있었어

 그땐 세상 무서운 게 없었고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달렸지

 이젠 세상이 버거워 술잔에 술을 부어도 반밖에 안 차

 나머지 반은 눈물이 채워지지"

나이 듦이란 늘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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