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혁세의 소리와 울림] 갈등해결 시스템부터 갖춰라

1956년 대구생. 경북고
1956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경영학과. 행시 23회. 재경부 금융정책과장.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사회 갈등 수준 OECD 2위

경제적 손실 연간 수백조원 달해

후진적 정치가 위기 극복 '발목'

타협'상생의 협력체제 구축해야

우여곡절 끝에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초 여야 합의안대로 통과될 듯하다. 특위 및 사회적 기구 구성에 합의함으로써 야당이 요구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라는 명분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앞서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공무원연금 개혁 지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야당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를 고집하면서 협상이 깨지고 급기야 기초연금 연계 논란으로 번지자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안 조기 처리를 압박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해석됐다. 지금으로서는 여야가 마련한 공무원연금 개혁안부터 통과시키고, 야당이 요구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나 기초연금 연계 등 공적연금 강화문제는 막대한 재원 조달이 필요한 사안이므로 추후 국민적 합의 절차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국회선진화법이 위세를 발휘하는 상황에서 333조원의 재정 절감 효과를 가져오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조기에 처리하려면 불만이 있더라도 '타협'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7개월이나 끌어온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도 한국노총의 대화중단 선언으로 결렬되었다.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진전을 보인 사안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정치권 상황을 감안하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삼성전자가 15조6천억원을 투자해 평택에 지으려는 반도체단지 공사도 송전선 건설을 막으려는 안성과 평택주민들의 반대로 삽 뜨기가 무섭게 난관에 부딪혔다. 6여 년을 끌어오다 지난해 말에야 겨우 완공된 밀양 송전탑 건설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한다면 41조원의 생산유발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150만 명의 일자리창출 효과를 가진 세계 최대 반도체공장 설립의 꿈이 무산될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협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가 위기를 인지하면서도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갈등 해결 능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해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수백조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신속한 갈등 조정과 위기 극복을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은 후진적 정치문화에 지목해야 할 것 같다. 정부정책의 무게중심이 행정부에서 입법부로 꾸준히 이동함에 따라 과거와는 달리 국회와의 사전협의 없이는 정책 추진이 어렵게 됐다. 그러나 국회의 전문성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이해관계 집단의 다양한 견해를 균형 있게 수렴해 국가 전체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조정하기보다는 목소리가 큰 일방의 주장에 휘둘리거나 포퓰리즘적 입법만 양산하고 있다. 특히 2012년에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법안 처리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에게 정작 시급한 민생법안이 항상 뒷전으로 밀려 나고 있는 상황이다.

좌우'지역'세대 간 갈등 심화도 심각한 문제다.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표출하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 그리고 갈수록 첨예화하는 지역 간 대립은 합리성이나 공익을 넘어 심각한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치권은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거나 조정하기는커녕 당장의 표심만 의식해서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경우도 종종 목격되고 있다.

대니얼 앨트먼 하버드대 교수는 정치 수준, 경쟁문화, 사회적 관습 등 개별 국가의 경제적 토대를 구성하는 '딥 팩터'(Deep Factor)가 향후 수십 년간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것도 딥 팩터를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협과 상생의 정치문화, 중앙과 지방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체제 구축, 국회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 건전한 시민단체 운동과 민간주도의 좋은 문화(칭찬, 기부, 타협, 토론) 확산이 중요한 이유다.

권혁세(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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