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도부터 그곳을 들락거렸다.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신 분은 초등학생이던 내 물통에 소주를 가득 채워 꼭꼭 잠근 뒤 당당하게 검표소를 통과하곤 했다. 한번은 우리가 자리를 옮긴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하필 별이 떨어졌다. 그분은 3회부터 비어 버린 내 물통보다도 더, 그 별의 행운이 빗겨간 것을 안타까워하셨다. 1980년대가 끝나자, 그분은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다니기를 멈추지 않았다.
까까머리, 교복, 대학생, 군인, 넥타이로 동행자는 계속 바뀌었지만, 글쎄 나는 계속 그곳 어딘가에 앉아 있었고 별은 항상 나의 머리 위로 광휘를 뿌리며 날아다녔다. 동석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녀석은 경기 도중에 구장 밖으로 나가버린 녀석이었다. "공이 밖으로 많이 떨어지니 밖에서 기다리는 게 낫겠다." 그 녀석은 결국 2시간 동안 혼자 와와 하는 함성만 들으며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에 홀로 서 있었다. 물론, 경기 후 만난 그 녀석은 빈손이었고.
2015년 5월 12일 화요일 삼성 대 한화의 시즌 3차전 경기. 4대 1로 끌려가던 삼성의 5회 말 공격. 신예 구자욱이 타석에 들어섰다. 한화의 투수 김기현은 힘껏 초구를 뿌렸고, 구자욱은 시원하게 공을 받아쳤다. 공은 아주 잘 맞은 탓으로 홈런 폴대를 제법 벗어난 파울 타구가 되었고, 이 타구는 이제 투수와 타자, 그리고 대구구장에 앉아있던 모두에게 영원히 잊혀질 터였다. 1루석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던 나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경험을 하던 중이었다.
타격음이 나고 별이 춤을 추며 날아온다. 처음에는 꼭 내게로 날아오는 것 같다. 호각소리가 들린다. 기세가 흉흉해 겁도 난다. 혜성은 어느 순간 묘하게 어긋나가기 시작하며 내 머리 위로 날아가 버린다. 뒤를 돌아보면 누군가가 공을 잡고 환호성을 지른다. 그런데, 어라? 이번은 달랐다. 공이 떨어진 부근에 사람들이 웅성대며 소란이 일어날 뿐 누군가가 득구(得球)의 고함을 내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바로 2초 전에 설마 하는 그 기척을 떠올렸다. 내 발뒤꿈치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나는 고개를 숙여 발밑을 바라보았다. 오! 그리고 거기에 있었다. 별이! 파랗다 못해 하얗게 축퇴된 백색왜성이! 내가 손을 대자 그것은 전 지구의 질량보다 더 큰 무게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티탄처럼 그것을 들어 올려 살인범과 같은 침묵으로 감춰 넣었다.
경기는 삼성에서 한화로 이적한 권혁의 포효로 끝이 났다. 나는 만면에 냉소를 머금은 채, 관중들의 탄식과 환호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승패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울고 웃는 한심한 인간들이여. 김성근도, 류중일도, 이승엽도 외야석에서 소주를 자시던 큰아버지가 그랬듯 언젠가는 흙으로 산화할 뿐인 것을. 그러나 나는 잡았다! 이 유물을, 이 실재를, 이 왜성을! 그리고 빛날 것이다. 그 먼 내세에도 이 완백(完白)은! 108가지 번뇌의 그 실밥이 몇 군데 해진들, 여전히 맞물린 태극의 구형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계속 울고, 웃어라. 어리석은 필멸의 인간들이여!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폐장(廢場)의 폭우 속에서.
"나는 사형보다 더 자주 그곳을 찾았소. 그런데 어찌 그런 대운이 사형에게만 돌아간단 말이오!" 사제 녀석의 푸념에 나는 답했다. "공을 쫓지 마시게. 공이 스스로 올 때까지 기다리게. 그것이 바로 이정제동(以靜制動)의 이치가 아니겠나." 한 재력가는 이런 은밀한 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12만원을 줄 테니, 그 공과 그 무용담 일체를 나의 것으로 해두세. 어떠신가?" 나는 대답했다. "그 배인 24만원이라도 불가하오. 이 공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되 그러나 내 인생의 유일이기 때문이오."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30년에 걸친,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해에 승리한 대구구장득구기(大邱毬場得球記)를 마칠까 한다. "갔노라! 보았노라! 주웠노라!"
박지형/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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