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기영의 진학 디자인] 좋아하는 과목을 잘하게 하자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종목은 달리기 아닌 수영이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줘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란 의미가 뜬다. 학생, 학부모들에게 이만큼 와 닿는 말도 별로 없을 것이다. 오를 듯 오를 듯 평균 등수는 잘 오르지 않고, 취약 과목을 공부하다 보면 잘하는 과목 성적이 하락한다. 골고루 공부했다 싶어도 결국은 취약 과목이 드러나고 만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시험을 치러도 이러한 희망고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고교 3학년 첫 모의고사를 치른 후 담임 선생님이 농담처럼 던지는 '3월 성적이 수능까지 간다'는 교육계 속설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가 작년 대구지역 고3 인문계 학생 1천103명, 자연계 학생 1천139명을 대상으로 3월 전국학력평가 성적과 수능시험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더니 3월 성적 대비 수능 성적이 평균적으로 약 5~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시험은 3월 평가와 달리 재수생과 반수생이 함께 치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학생, 학부모 입장에서는 1년 내내 땀 흘려 공부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 능력과 패턴에 대해 분석하고 올바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나만 열심히 하면 돼'라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열심히 할 때 나보다 성적이 나은 학생들도 분명히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상위권 학생의 학습 패턴을 중위권 학생이 무작정 따라하는 것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상위권 학생은 시험에서 과목마다 만점을 목표로 학습하지만 중위권 학생이 같은 목표로 학습한다는 것은 학습 능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생각이다. 차이를 인정하되 자신에게 경쟁력이 있는 과목에서 만점이나 상위권 진입을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재해석해 보자.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이유에 대해 우리는 거북이가 꾸준히 달렸기 때문에 게으른 토끼를 제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끼가 잠을 자지 않았다면 거북이가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결코 이길 수 없는 경주인 것은 분명하다. 달리기라는 종목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없듯이 한 번 벌어진 과목의 학력 격차 역시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학력 격차를 좁히거나 역전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 비춰 보면 간단하다. 바로 경기 종목을 수영으로 바꾸면 된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경쟁력이 있는 과목에서라면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역전도 가능한 것이 공부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모든 과목에서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는 힘들지만 개별 과목에 대한 능력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영어를 좋아하는 학생, 과학이 재미있는 학생, 사회 공부가 쉬운 학생이 그 과목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중'고등학교 내신에서는 이러한 개별 교과에 대한 경쟁력이 강점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현행 대학입시 체제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체 모집 인원의 70%를 뽑는 수시모집에서 수능시험은 최저학력기준이라는 제한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대학이 2, 3개 영역만 반영한다. 정시모집에서도 과목별로 반영비율에 차이를 두고 있다. 인문계열에서는 전체적으로 국어, 영어, 수학의 반영비율이 사회탐구보다 높다. 특히 상위권 대학에서는 영어, 수학의 반영비율이 다른 과목에 비해 높다. 자연계열 경우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에서 수학, 과학탐구에 많게는 50%의 가중치를 부여한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과목을 파악하는 일은 고교 진학 후 계열 선택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대학입시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성적은 고정돼 있다는 교육계의 속설 역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교과목 위주로 열심히 할 때는 깨뜨릴 수 있는 말이다. 심리적으로도 좋아하는 과목을 공부할 때 집중력이 높아지고, 우수한 성과를 거뒀을 때 만족감도 더 클 수 있다. 현행 대학입시는 거북이가 달리기를 잘하도록 억지 훈련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수영으로 종목을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김기영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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