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천궁녀 설화' 얽힌 낙화암…백마강엔 '의자왕의 비애' 흐른다

백제의 자취 따라 '부여 여행'

무왕과 선화공주의 로맨스를 전하는 궁남지.
무왕과 선화공주의 로맨스를 전하는 궁남지.
백마강유람선에서 올려다본 낙화암과 고란사.
백마강유람선에서 올려다본 낙화암과 고란사.
삼천궁녀 역사 왜곡의 현장인 낙화암과 백화정.
삼천궁녀 역사 왜곡의 현장인 낙화암과 백화정.

낙랑공주'호동왕자, 마의태자의 비화(悲話)가 아니더라도 왕조의 몰락은 언제나 슬프다. 나라의 천시(天時)가 닫히는 일이니 분명 범사(凡事)와는 다르다.

왕조의 몰락 역사 중 백제처럼 드라마틱하고 서사(敍事)적인 사례도 드물다. 의자왕이라는 실패한 군주에 낙화암, 삼천궁녀라는 에피소드까지 덧붙여져 향수와 정한의 깊이가 다른 왕조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백제의 역사에 다가서는 일, 옛 군주와 사건의 동선을 따라 현장을 답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1천300여 년 전 백제의 자취를 따라 부여로 떠나보자.

◆백제의 '타임캡슐' 부소산성=부소산은 '껍데기는 가라'를 지은 향토 시인 신동엽이 부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고 칭찬한 곳이다. 높이는 100m 남짓한 야산이지만 북쪽은 백마강이 천연 해자를 이루고 3면이 급경사 구릉을 형성해 최고의 요새 지형을 갖추고 있다. 능산리에서 뻗어온 성곽이 외성(外城)이라면 부소산성은 궁궐을 직접 방어하는 내성(內城) 기능을 했다.

산성 입구에서 표를 끊고 오솔길로 들어섰다. 수은주가 30℃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지만 짙은 활엽수림과 소나무숲이 짙은 그늘을 드리워준다.

처음 만나는 곳이 삼충사(三忠祠). 백제 말기 세 충신 성충, 흥수, 계백 장군을 모신 곳이다. 집권 말년 권력에 취한 의자왕은 정사를 멀리하고 충신들의 충언을 듣지 않아 사직의 멸망을 초래했다.

산성을 오른쪽으로 돌아 30분쯤 걸어가면 영일루, 군창터가 나오고 정상의 사자루와 만난다. 산성 곳곳에서는 고대 선사~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 발굴이 지금도 한창이다.

◆낙화암'삼천궁녀 역사 왜곡=부소산성 답사를 마치고 구드래선착장으로 향한다. 주중엔 유람선이 뜨고 주말이나 단체관광객이 몰리면 황포돛대 유람선이 운항된다. 강 가운데 이르자 가파른 절벽을 배경으로 낙화암이 눈앞에 펼쳐졌다. 절벽 중간쯤 송시열이 새겨 놓았다는 '낙화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오래전 제기된 일이지만 백제 역사를 통틀어 낙화암, 삼천궁녀처럼 사실(史實)이 왜곡된 사례도 드물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통틀어 낙화암이나 삼천궁녀에 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없다. '삼천'은 단지 '많다'는 의미로 조선 중기 한 문인이 쓴 문학적 표현이고 '낙화암'도 우암 송시열이 후대에 당시 일화를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수사에 불과하다.

삼국유사에 '당군, 신라군에 쫓긴 궁인, 백성들이 떨어져 죽었다 해서 '타사암'(墮死巖)이라 불렸다'는 내용이 각색돼 '삼천궁녀 설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고란사 선착장에서 낙화암(백화정)까지는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백화정은 부여 외곽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의 전경을 굽어볼 수 있어 부소산을 통틀어 가장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백제금동향로=백마강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바로 박물관 투어에 나선다. 구드래선착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정림사지오층석탑, 정림사지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이 인접해 있어 같이 묶어 학술모드로 진행하면 좋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미륵사탑과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탑으로 분류된다. 신라가 3층석탑 양식으로 일관했던 데 비해 백제는 3층, 5층, 목탑 양식 등 다양한 형식의 탑을 건축했다.

정림사지탑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사비성을 함락한 후 '평제비명'(平濟碑銘)이라는 명문을 새겼다. '패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일종의 포고였다. 1993년 이후 부여 관광의 체크리스트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백제금동향로다. 모두 42마리의 짐승, 5인의 악사를 비롯한 17명의 인물과 74개의 봉우리에 펼쳐진 조각에는 백제인의 예술, 종교, 생활관이 집약되어 있다. 발굴 당시 문체부 장관이 직접 브리핑을 한 건 유명한 일화다. 박물관에서 단독전시관을 마련해 특별히 예우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귀가길에 들른 궁남지는 연꽃의 화원이었다. 제30대 백제 무왕이 건립한 이 연못은 왕비였던 선화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하다. 무왕으로부터 왕위를 계승한 의자왕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외가(外家)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적국(敵國) 신라인을 어머니로 두었다는 핸디캡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이 때문에 태자책봉, 왕위계승 과정에 많은 시련을 겪었다. 의자왕은 집권 15년에 이르러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비로소 친정(親政)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왕의 긴장도 느슨해졌다. 연인이었던 은고(恩古) 왕비와 단꿈에 젖어 정사를 멀리하고 충언하는 신하를 물리치면서 권력의 단맛에 취해갔다.

당나라 13만 대군이 백마강을 거슬러 오르고 신라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대가 사비성을 에워쌀 때에야 권력의 깊은 잠에서 깨어났으나 때는 이미 기울어버린 후였다.

글 사진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가는 길=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 못 미쳐 비룡JC로 올라 대전남부순환고속국도를 탄다. 서대전IC에서 내려 논산으로 와 부여 방향 이정표를 보고 진행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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