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김달선 할머니 노환으로 별세
김희정 장관·김관용 지사 빈소 찾아
"생전 사과 없다면 또 다른 역사 과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포항의 김달선(91) 할머니가 11일 오후 9시 15분쯤 포항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1925년 포항시 북구 환여동에서 3남 3녀 중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19살이 되던 해인 1943년 어머니를 따라 흥해읍에서 청어를 팔던 중 길거리에서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미얀마로 가는 배에 태워졌다. 그곳에서 여자로서는 차마 겪을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자궁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마지막 배로 부산에 도착했으나 몸이 너무 아파 2년간 부산에 머무른 뒤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불행은 계속돼 6·25전쟁으로 남자 형제들이 모두 죽고 홀로 생선과 채소 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생활하다 50살이 되던 해 가정을 꾸렸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가 평소에 "지금도 일본놈들이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라고 하는데 죽기 전에 자꾸 이야기를 해야 해. 그래서 일본놈들의 사과를 받아야지"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는 주변의 권유로 1996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김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포항시민장례식장에는 할머니의 여동생과 조카가 고인의 가는 길을 지켰다. 할머니의 유해는 13일 포항화장장에서 화장된 후 포항 여남동 조모 산소에 뿌려질 예정이다.
한편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과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빈소를 찾아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김희정 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인류사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범죄다. 피해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의 사과는 의미 없다. 살아생전에 사과하지 않는다면 또 한 번의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로 인류사에 기억될 것임을 가해당사국은 명심하길 바란다"고 했다.
◆안동 출신 김외한 할머니도 별세
남편 권유로 '나눔의 집' 찾아
위안부 피해 싱존자 이제 50명 뿐
11일 오후 8시 40분. 경기도 광주의 한 병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외한(81)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해 온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이제 50명밖에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12년 12월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오다 이날 오후 건강이 악화돼 끝내 숨을 거뒀다.
김 할머니는 1945년 2월 불과 11살의 나이에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다. 김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일본군의 무자비한 능욕과 학대에 시달렸고,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광복 후에는 징용에서 돌아온 지금의 남편(89)을 만나 안동에 정착했고 4남 1녀를 낳았다. 남편과 정이 깊었던 김 할머니는 남편의 권유로 지난 1998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김 할머니는 나눔의 집도 남편과 함께 찾았고, 명절이나 기념일이면 김 할머니를 찾아오는 남편 덕분에 다른 할머니들의 부러움을 받았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밥 먹었나? 밥 챙겨 묵으레이!"라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정겨운 인사를 자주 했다고 나눔의 집 관계자들은 전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은 스스로 잘못을 꼭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잊지 않고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12일 안동의료원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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